원자폭탄 ‘리틀보이’와 ‘팻맨’은 일본 제국주의를 침몰시키며 ‘핵무기 문화’라는 주름을 역사에 남겼다. 1945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의 4%는 핵무기를 주제나 소재로 한 영화다. 근작 <다이하드-굿 데이 투 다이>도 체르노빌에 숨겨진 플루토늄을 훔치려는 테러조직 얘기로 이 장르에 든다.
핵 덕에 광복을 얻은 우리나라는 역설적이게도 핵을 둘러싼 주변국의 ‘오판’으로 한국전쟁을 치러 핵무기 문화에 민감도가 높은 편이다. 2차 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핵무기 독점에 대한 자신감으로 재래식 군사력의 대대적 감축에 들어갔다. 한국을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한 트루먼 정부의 ‘애치슨 라인’도 핵 우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한다. 1949년 8월 소련이 예상보다 일찍 핵실험에 성공했음에도 미국은 소련이 전쟁을 일으키면 핵무기와 재래무기를 총동원해 초전박살 내면 된다는 ‘오프태클’(상대의 허점을 찔러 공을 전진시키는 미식축구 용어) 계획을 세웠다.
반면 핵실험으로 자만한 소련의 스탈린은 미국이 쉬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김일성의 남침 승인 요구를 받아들인다. 핵무장이 국지전을 억제할 것이라는 맹신이 남북한 군인 140만여명과 남북한 인구 5분의 1의 사상·실종이라는 참극을 빚은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뒤 벌인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 셋 가운데 두 명이 “북한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다. 자국의 핵무장 필요성에 대해 72.8%가 반대 의사를 표시한(2009년 <후지티브이> 조사) 일본인과 핵무기 문화의 온도차가 무척이나 다르다. 핵무기를 반대한 ‘소립자 과학자’ 이휘소가 공영방송(드라마 <아이리스2>)에서 여전히 ‘핵물리학자’로 표현된다. ‘핵 신앙’이 부른 민족의 비극이 허망하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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