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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표현하게 하라, 문화는 융성한다

등록 2013-02-27 19:52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싸이의 5집 앨범 ‘라잇 나우’는 2010년 여성가족부에 의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됐다. 19살 이하 판매 금지(19금) 처분이라지만,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분이다. 여가부는 2012년 10월 이 처분을 슬그머니 해지했다. 덩달아 다른 300여곡도 족쇄에서 풀렸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온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자, 정부가 꽁지를 내린 것이다.

사실 ‘라잇 나우’는 저질스럽지도, 문란하지도 않았다. 술이나 생쑈 등 뒷골목 언사를 일부 쓴 게 전부였다. 이에 비하면 ‘강남 스타일’의 말춤과 가사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유통되지 않았다면, ‘강남 스타일’ 역시 국내의 족쇄에 묶여 사장됐으리라는 지적은 이 때문에 나온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이른바 유해매체는 수백개에 이르고, 엠비시가 5년간 방송금지한 것만 해도 무려 1280곡에 이른다. 이명박 정권은 상상력의 감옥이고, 단두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취임사에서 문화융성을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함께 국정 3대 과제로 꼽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과 원리가 없고 추상적이라는 말이 적지 않았지만, ‘문화 융성’의 다짐 하나만으로도 귀가 뻔쩍 뜨였던 건 이런 까닭이었다. ‘오로지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김구 선생의 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만한 의지를 밝힌 대통령이 있을까, 그것만으로 고마웠다. 물론 미심쩍었다. 다양한 의미의 문화를 두서없이 섞은 것이나, 문화를 시종 돈이나 산업과 연결시킨 것이 그랬다. 게다가 그는 대통령 후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 <시네마 천국>을 꼽았다. <서편제>나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등 우리 영화 한 편쯤 언급할 줄 알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유년의 꿈과 추억을 소재로 한 외화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청년기의 엄청난 충격으로 말미암아, 정서적 성장이 중단되고, 그래서 유년의 기억 속에 매몰돼 있는 건 아닐까.’ 안타깝지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 ‘문화가 있는 삶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공연히 까탈부릴 일은 아니었다. 그러자면 꼭 기억할 게 있다. 현대사에 가장 암울했던 문화적 암흑기는 바로 유신 때였다. 글이건 그림이건 노래건 작가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무엇보다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 건 표현 곧 감정의 드러냄을 막는 것이었다. 사실 그건 작가의 생명현상인데, 그걸 막아버렸으니 이들이 참고 있을 순 없었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기라도 했다. 1974년 1월7일, 유신체제 등장 이후 처음으로 문인 61명이 개헌촉구 성명을 발표한 건 그런 차원이었다. 유신정권은 바로 그날 오후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1호를 발동했다. 하지만 침묵할 작가들이 아니었다. 문인간첩단사건이란 것도 조작됐지만, 이들은 그해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꾸려, 반유신 전선의 참호까지 구축했다.

민주화 이후라지만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닭을 닭이라 말하지 못하고, 쥐를 쥐로 그리지 못했다. 숫자로만 보면, 이 정권에 의해 고소 고발 혹은 사법처리 당한 작가들은 유신 혹은 5공 정권 때보다 많았다. 끝없는 소환조사, 마구잡이 기소와 끝없는 재판, 그리고 벌금형 등으로 작가들의 진을 빼기도 했다. 지난해 작가 137명이 이런 정권의 교체를 희망하는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로 차례로 경찰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건 그 상징이다.

박 대통령도 면책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 달 전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콘’의 ‘용감한 녀석들’ 꼭지에 대해 징계(행정주의 조처)를 내렸다. “박근혜, 님 잘 들어, … 꼭 한가지, 코미디는 하지 마”라는 멘트 즉 반말이 문제였다. 영상물등급위원회도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박근혜를 풍자했다는 독립영화 <자가당착>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했다. 사실상 상영 금지 처분이다. 문화 융성이라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지원 따위는 생각 말고, 그저 작가들의 상상력, 그들의 입과 손과 마음을 억압하지 않으면 된다. 그대로 두어라. 그것이 문화 융성의 길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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