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봄이 왔다. 하지만 겨울의 여운이 짙다.
한창 추웠던 1월 말, 다섯살 아들은 어린이집 발표회에서 춤을 추고 북을 쳤다. 발표회 전날까지 살얼음판이었다. 단체활동을 싫어하는 아들 녀석은 딱 두 번 연습에 참가했다. 발표회를 망칠까 싶어 아들을 미리 빼달라고 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기막힌 반전을 선사했고, 그날 다른 반 선생님과 학부모로부터 “잘했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돌이켜 보면, 아들은 집에서 발표회 때 쓰일 노래를 잠자기 직전까지도 흥얼댔다. 뜬금없이 춤동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만약 부모나 어린이집의 판단만으로 아들에게서 발표회 참가 기회를 뺏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 모두 상처받은 겨울이 됐을 것이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도 지난겨울은 길었다. 일본 고치현 전지훈련 도중 올해도 2군 리그에서 교류경기로 48경기밖에 치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4시간 고된 훈련을 이어온 원더스 선수들에게는 힘 빠지는 소식이었다. 경기 수가 적다는 것은, 프로리그로 갈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경기 수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미국, 일본처럼 독립리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국내 유일의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가 상대할 수 있는 팀은 프로야구팀들밖에 없다. 실업팀이나 대학팀들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실력 향상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로 3군 리그를 활성화시킨다고 하지만 구단끼리 상의해 따로 일정을 짜는 것이라 보장된 것은 없다.
칠순이 넘은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도 근심이 많아졌다. “프로야구계가 표면적으로는 저변 확대를 외치면서도 고양 원더스에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섭섭해하는 눈치다. 한두 번 좌절을 맛본 선수들이기에 야구 인생 마지막 도전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전지훈련 동안 김 감독은 야구공에 다리를 맞아 절뚝이면서도 선수들을 직접 가르친 터였다.
한국야구위 입장도 일견 수긍이 간다. 지난해 9개 프로구단들은 원더스와의 2군 경기를 상당히 껄끄러워했다. 한국 야구 사상 첫 독립구단인데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취임해 원더스는 안팎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야구위 양해영 사무총장은 “프로팀과 고양 원더스는 경기를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고양 원더스는 개인이나 팀 성적이 중요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지만, 프로 2군 팀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
기존 구단들이 일궈놓은 장마당에 고양 원더스가 숟가락만 얹으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야구 관계자는 “구멍가게 하나도 권리금을 받고 파는데, 기존 구단들이 당연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고양 원더스가 정식 회원도 아닌데 너무 억지를 부린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제2, 제3의 독립구단이 탄생할 수 없다. 원더스의 미래 또한 장담이 어렵다.
아들 발표회가 끝난 직후 어린이집 선생님께 ‘연습이 부족한 아들을 발표회에서 빼지 않아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선생님의 답장은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이도 똑같이 소중한 풀잎반 아이랍니다.’
우리는 가끔 ‘그도, 그들도 우리와 같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를 잊고 산다. 고양 원더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도권 밖에 있다고 해서,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야구선수가 아닌 것은 아니다. 원더스 선수들도 전체 야구계가 보호하고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할 야구선수다. 모든 열정은 평등하니까.
김양희 스포츠부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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