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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마천루와 기린 / 김의겸

등록 2013-03-20 19:18

기린은 큰 키 때문에 선천성 고혈압 환자다. 심장과 머리가 멀다 보니, 강한 압력으로 피를 뿜어야 하기 때문이다. 혈압은 160~260㎜Hg로 사람의 두 배이고, 심장은 11㎏이나 된다. 또 원더네트(wonder net) 등의 복잡한 혈관조직을 지니고 있다. 피가 뇌로 들어갈 때 혈압을 낮추고, 긴 목을 지나는 동안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하는 특수장치들이다. 물도 마시기 힘들다. 목을 숙이면 머리로 피가 몰려 뇌출혈로 죽을 수도 있다. 이러다 보니 수분을 아끼기 위해 오줌도 농축시켜서 내보낸다.

비경제적이란 측면에서 초고층 빌딩도 기린을 닮았다. 꼭대기까지 사람과 물건을 올리려다 보니, 건물에서 엘리베이터가 차지하는 공간이 턱없이 넓다. 100층 높이면 대략 60대가 필요하다. 또 전기 먹는 괴물이다. 고층 빌딩일수록 복사열을 많이 받고, 풍속이 빠른 탓에 냉방하는 데 부하가 많이 걸린다. 거꾸로 밤에는 야간복사로 난방 손실이 커지니, 실내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서리가 맺히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 평당 건축비가 일반 빌딩보다 3배 이상 든다.

기린의 목은 높은 곳의 나뭇잎을 따먹기 쉽도록 진화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싸우는 과정에서 목이 길어졌다는 이론이 나오고 있다. 긴 목은 사랑을 위한 투쟁의 무기인 셈이다. 인간 사회에서 초고층 빌딩은 과시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라도 다른 사람들 머리 위에 올라서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좌초될 위기에 몰리면서 ‘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초고층 사업은 경제가 활황일 때 시작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을 맞는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빌딩의 그늘에 묻혀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마천루의 축복’이라고 할 것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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