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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각성이냐 상실이냐 / 박권일

등록 2013-03-25 19:22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일본에서 회자되고 최근 한국 언론에도 소개된 ‘사토리 세대’라는 신조어가 있다. 사토리(悟り)는 ‘깨달음’을 뜻하는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일본에서 태어난 지금의 10대~20대 중반의 청년들을 가리킨다. 사토리 세대를 다룬 책 <갖고 싶은 것 없는 젊은이들>에서 야마오카 다쿠는 ‘브랜드 옷을 사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 등으로 이들의 특징적 생활방식을 소개하면서 “현대 젊은이들의 목표는 느긋하고 평온한 삶”이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가 과시해온 생산력의 바탕에는 끝없이 소비가 늘어날 거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소비자들이 계속 새로운 걸 욕망해야 기업이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별나게 금욕적인 청년 세대의 등장은 지금까지 당연시되던 욕망의 사이클에 심각한 위협일 수밖에 없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일본교통공사에 따르면 20대 해외여행자는 2000년 417만명에서 지난해 294만명으로 줄었다. 또 일본자동차공업회에서 조사한 18~24살 면허 취득자 중 실제로 운전하는 비율은 1999년 74.5%였으나 2007년 62.5%로 감소했다.

장기 불황의 터널에 들어선 한국은 어떨까. 이미 사토리 세대와 유사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일본처럼 금욕적인 세대가 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세대’라 부를 정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와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기 시작한 젊은이들이 바로 한국판 사토리 세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과 처음부터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태도다. 자신을 ‘잉여’라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는 그 감각 내지 기준은 기성세대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에 정확히 맞춰져 있다. 요컨대 ‘욕망하니까 잉여다.’ 욕망하는 것이 없다면 스스로를 잉여라 느끼지도 못한다.

사토리 세대의 면면은 확실히 근본주의적인 데가 있다. 급진 생태주의자들의 ‘자발적 가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68세대’보다 훨씬 더 반자본주의적 주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그들은 쩨쩨하게 공장 몇 개를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비를 멈춰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을 파괴할 수 있는 해방의 주체는 아닐까?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평등’이란 가치를 떠올려보자. 한국 사회의 평등주의는 어딘가 뒤틀려 있다. 전체 사회 구성원 간의 불평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부자와 나 사이의 불평등만 문제 삼는 평등주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왜곡된 평등주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엔 불평등한 상태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감과 대자적 인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토리 세대의 사고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보면 어떻게 될까. 개인 차원에서 욕망을 소거하다 보면 결국 그것은 소승불교적 개인주의에 가까워진다. 물적 분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대개의 동물은 자신이 먹을 만큼 사냥할 뿐 소유하고 축적하고 과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토리 세대화를 일종의 ‘동물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게다.

사토리 세대를 반자본주의적 각성으로 볼지, 욕망의 상실로 볼지를 결정하기란 난감하다. 다만, 사회학자 잉글하트의 탈물질주의 개념을 활용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일정한 경제적 풍요를 달성한 뒤에는 한 사회의 탈물질주의 경향이 강해지지만,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비율이 다수파가 될 정도로 계속 높아지는 건 아니라고 한다. 사토리 세대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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