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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책임정부의 필요성 / 김규원

등록 2013-03-31 19:22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최근 영국에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면초가에 놓였다. 지난해 이후 보궐선거에서 7차례나 잇따라 패배했고, <업저버>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2015년 총선거에서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에게 총리 자리를 넘겨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각의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이번 여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캐머런의 당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만약 이번 여름에 메이 장관이 캐머런 총리의 당권에 도전해 승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캐머런 총리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영국의 총리는 반드시 집권당의 리더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이 장관이 보수당의 파트너인 자유민주당과 계속 연립정부를 유지할 수 있다면 영국의 두번째 여성 총리가 될 것이다. 연립정부 유지에 실패하면 조기 총선거가 치러져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캐머런 총리가 메이 장관보다 당 안팎에서 훨씬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장 영국 총리가 바뀔 가능성이 작은 편이다.

영국에서는 총리나 내각의 지지도가 매우 낮게 유지되거나 중요한 법안의 통과가 의회에서 실패하는 경우, 총리가 물러나는 일이 있다. 20세기 들어 영국에서 가장 오래 집권(11년)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시민들이 반대하는 인두세를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다가 동료들에 의해 쫓겨났다. 두번째로 오래 집권(10년)한 토니 블레어 총리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략에 맹종하다가 맞수인 고든 브라운에게 총리를 내줘야 했다.

의회중심제에서는 정치에 실패한 지도자가 임기에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 적지 않다. 총리가 문제를 일으키면 집권당에서 총리를 갈아치우고, 그 내각(행정부)이 잘못하면 의회에서 불신임함으로써 내각을 총사퇴시킨다. 영국에서는 특히 후자를 ‘책임정부’라고 부른다. 영국의 내각은 평민의회(하원)의 권한을 위임받아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내각이 정치를 잘못하면 의회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최근 인사와 관련해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도 협의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를 보면서, 이젠 한국에서도 ‘책임정부’를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사실 박 대통령뿐 아니라, 1987년 개헌 뒤의 대통령 대부분이 국가의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일이 아주 많았다. 대통령의 권한은 시민이 위임한 것인데도 대통령은 시민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권한을 행사해왔다. 대통령의 5년 임기를 경직적으로 보장해 대통령이 시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지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1987년 헌법의 결함으로 인한, 이런 ‘외람된 대통령’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수장을 시민의 통제 안에 둘 수 있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한다면 임기 축소와 2임 허용, 임기 중간 총선거, 중대 정책에 대한 시민(국민)투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시민소환, 시민투표에 의한 최종 탄핵 결정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회중심제를 도입한다면 외람된 대통령은 그 즉시 사라질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통치란 권력을 잃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수행된다”고 말했다. 위임받은 권력을 언제든 박탈당할 수 있다면 집권자는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시민의 의견을 받들어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번에 개헌을 해서 하인들의 이런 외람된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4년 뒤에도 우리는 하인이 아니라, 상전을 뽑게 될 것이다.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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