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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선수의 눈물 / 김동조

등록 2013-04-01 19:24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책은 이상한 상품이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의 차이는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그런데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가격은 거의 같다. 좋은 책이라고 해서 턱없는 값을 부르지 않는다. 다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오려고 노력하고, 책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책을 골라내려고 애를 쓴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이 팔리는 책이라면 그 이면에는 의미 있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몇백만권씩 팔리는 사회는 ‘정의’에 대한 갈증으로 바싹 말라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중의 목마름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는 성공하기 어렵다. 제목만 들어도 아련해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역시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읽었다. 꿈과 성공에 관련된 책들도 꾸준히 팔렸다. 사람들은 어딘가 아파하고 위로를 원하며 성공을 갈망하는 중이다.

야구감독 김성근이 쓴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함께했던 선수들이 쓴 편지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프로 야구선수가 된 최동수는 나름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뭐가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그는 김성근을 만나서 ‘아, 내가 지금까지 노력이 부족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연습 스윙을 많이 하면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다른 사람이 펴주던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목에 공을 맞고 변기에 피를 토하며 ‘이렇게 해서 정말 될까?’라며 울었다. 식당에서 혼자 일행을 기다리다 이 대목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아,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될 수가 없다. 무조건 된다’라고 혼자 되뇌던 최동수는 전지훈련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김성근이 써준 쪽지를 읽게 되었다. “그때까지 고생했던 순간들이 무슨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제 마음속에 들어 있던 제 스스로에 대한 원망 같은 것도 녹아서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리고 꿈꾸던 변화는 영화처럼 찾아와, 7년 동안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며 2할이 안 되던 그의 타율은 3할에 가까운 타율로 올라선다.

세상은 불공정하고 사회는 정의롭지 않다는 느낌은 사람들을 좌절시킨다. 사회적인 불의와 폭력 그리고 운명의 광포함을 개인적 노력만으로 극복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뒤처진 출발선을 극복할 수 없다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경기 자체를 포기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적 불공정함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연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과 함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꿈을 이루려는 개인적인 노력 또한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주체적인 삶 없이는 어떤 제도적 도움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행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최동수의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의 삶의 고단함이 내게 온전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운명을 개척하고 꿈을 이루려는 구체적인 방법만은 인생에서 그 누구도 대신 가르쳐줄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 눈물은 더 절절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선수를 버리지 않는다”라는 김성근의 말은 내게 깊은 위안을 주었다. “의지와 신념을 잃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길은 반드시 나타난다”라는 말은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김성근이라서 참 좋았다. 오랜만에 가격보다 가치가 훨씬 높은 책을 고른 기쁨은 덤이었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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