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재수생이 뭐예요?”(선수)
“….”(기자들)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한 아마추어 국가대표 골퍼. 경기 뒤 공식 인터뷰 도중 이런 질문을 던져 취재진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 학교 수업 제대로 못 받고 공 치는 데만 전념해서 그런 흠결이 생긴 것일까? 다들 뜨악했다.
비슷한 사례 또 하나.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기자)
“늘 열심히 해왔던 선수로 낙인찍히고 싶어요.”(선수)
허걱, 이게 무슨 소린가? 낙인찍히고 싶다니…. 개인 인터뷰에 응한 스포츠 스타의 뜻하지 않은 답변에 담당 기자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린다.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며 경기 전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도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이 선수 정말 말을 안 한다. “귀찮게 하지 마세요.” 질문을 하면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 탓인지 황당한 표현의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스타이다.
관련 경기단체 부회장은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공부가 안 됐기 때문”이라며 이해를 부탁한다. 뭐 그럴 수 있다. 이 선수 훈련 도중 자신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거나 뭔가 물어보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언론 친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스포츠 팬들에게는 아이돌인데…. 세계가 알아주는 대스타들의 이런 불편한 진실.
그런데 그와 함께 대회에 출전한 한 남자 선수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북(e-Book)에서 내려받아 대회 도중에 짬을 내서 책을 읽는다고 한다. 2주에 한 권씩 독파가 목표다. 나중에 직접 자서전도 써보고 싶다나. 질문을 해보면 표현력과 전달력도 좋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영리함도 배어나온다.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무대, 각종 프로 투어에서 정상에 오른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들. 수없이 많다. 스포츠 강국 코리아다. 근데 운동에서는 세계 최고이지만 뭔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선수들도 적지 않다.
한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꼭지인 ‘멘붕 스쿨’. 한 여성 출연자가 나와 선생님을 향해 단어 하나가 틀린 문자를 구사하는 것에 사람들은 깔깔 웃어댄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라면 당혹스럽다. 실제 어떤 프로스포츠 감독은 말실수인지 농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취재기자들과의 담화 중 “파리에선 파리법을 따라야” “대기만사성” 등 마치 멘붕 스쿨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의 박종우는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승리 뒤 ‘독도 세리머니’를 했다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경기장에서 어떤 정치적·이념적 슬로건을 배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을 몰랐던 것이다. 사전에 그런 것에 대한 교육이 전무했던 탓이다. 그건 그렇다 치자. 병역혜택을 받았다는 기쁨을 폭발시키기에 앞서, 패자의 아픔부터 헤아려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을 왜 우리 선수들은 보여주지 못한 것일까?
엘리트 선수들의 궁극적 목표는 금메달이나 우승이다. 하루 10시간 넘는 훈련도 소화해내는 정신력은 정말 대단하다. 한국 프로배구판에 뛰어든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구단의 단내 나는 훈련에 놀라 처음엔 저항하다가도 결국 이를 따르게 된다고 한다.
지도자나 관련 경기단체는 선수들에게 적절하게 인격수양도 시키고, 교양도 쌓도록 지도를 했으면 좋겠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총본산 대한체육회도 이런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선수들을 운동기계로만 만들지 말자. 알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바른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김경무 스포츠부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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