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요즘 새누리당과 정부, 그리고 재벌들은 박근혜 정부가 핵심국정기조로 삼은 ‘창조경제’가 무언지 이해가 안 가 이른바 ‘열공’ 중이라 한다. 그런데 실은 그것의 주창자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새로이 부활된 해양수산부의 장관 후보는 청문회에서 스스로 “잘 모르겠다”고 선포했고 그의 동영상은 마침내 유머게시판에 올랐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모를 것은 ‘창조경제’,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의 정체성만이 아니다. 복지 전문가들은 ‘박근혜표 복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복지를 희생함으로써 한국 경제를 일으켰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부족한 말이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경제’였다면, 나는 ‘복지’다”를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전략은 매우 매력적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마저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노인연금에서 삐끗대고, 4대 중증질환 보장에서 완전히 속내를 드러냈다. 이제 와서 “애초 공약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억지를 부리니 참으로 창피하다. 제대로 된 참모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의 ‘불통’이 원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것이든 문제는 심각하다.
여전히 ‘박근혜표 복지’가 무엇인지 몰라 헤매던 차에, 드디어 이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사태가 발생했다.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이다.
“지방의료원, 지방거점 공공병원을 활성화하겠습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부터 꼼꼼히 챙기겠습니다. … 어렵다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줄여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누가 한 말일까? 앞의 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고 뒤의 말은 홍준표 도지사의 취임사다. 의회를 권력의 들러리로 만드는 것도 닮았다. 홍준표 도지사도 환자에 대한 퇴원조치와 의료진에 대한 해고 예고 통지를 먼저 한 후 뒤늦게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의료원 폐쇄 이유도 ‘적자’에서 ‘강성 노조’로 말을 바꿨다.
이런 와중에 아픈 서민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께 업무 보고해 가슴 벅찬 감동”을 표했던 그의 ‘감수성’은 아픈 서민들에 대해서는 작동하지 않는 걸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공공병상 비율은 70%가 넘고, 복지국가 스웨덴·노르웨이는 90%가 넘으며, 미국도 30%에 달한다. 그런데 겨우 10%도 안 되는 공공병상을 가진 나라에서 도립병원 하나 유지 못 하고 몇 개 안 되는 공공병원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지방관·장관·대통령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더욱이 작금의 진주의료원 사태는 크게 보면 서민의 건강보다 민간 보험회사와 공급자들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다. ‘의료 민영화’ 정책이 휩쓸고 간 자리, 공공의료는 무너지고, 영리적 병원과 민간보험이 득세하는 곳에서 의료비는 하염없이 오를 것이다. 이제 돈 없는 서민이 슈퍼마켓에서 실과 바늘을 사서 직접 자신의 찢어진 상처를 꿰매야 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의료비에 대한 통제능력을 상실한 정부가 무슨 방법으로 의료보장 수준을 공약대로 높이겠는가? 급하고 절박하다. 암과 싸우는 것만으로 힘에 겨운 김씨 할머니, 이씨 할아버지가 병원 폐쇄로 불안에 떨고 있다. 지금 홍준표 도지사의 오기를 잡을 수 있는 건 대통령뿐이다. 이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단언컨대, “박근혜표 복지=홍준표다.”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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