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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감정의 복수 / 한종호

등록 2013-04-10 19:36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우울이라는 유령의 그림자가 한국 사회를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우울은 자신에 대한 치명적 폭력을 더욱 강력하게 행사하도록 만들고 있다. 오래전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대한 자조적 탄식을 쏟아냈다면, 지금 우리는 ‘우울과 자살’을 술처럼 권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하는 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줄 방도가 없게 되면, 인간은 절망의 늪에 빠진다. 그걸 예감하는 순간, 삶에 대한 자신감은 소멸하기 시작하고 목표로 설정한 인생의 미래는 신기루처럼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끝없이 회의하고 ‘무의미의 터널’ 속을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이다.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러한 질병에 시달리는 주변을 목격하고 있다. 감정은 질서를 잃고, 의식은 분산되어 다시 자신으로 돌아오는 귀로를 찾지 못한다. 요즈음 떠들썩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긴 이름의 질환도 따지고 보면 심리적 압박을 정서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정신을 균형 있게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집단적으로 상실해가고 있는 중이다.

성과를 재촉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착취하고 피로하게 만들면서 서서히 자기를 죽여가고 있다. ‘뭐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식의 이른바 긍정성의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정신을 고갈시켜가고 있으며, 그로써 우리는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교 1등을 다투는 명문 자사고의 고등학생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는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고 있다’고 써져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성적도 좋은 아이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고 죽을 생각을 하는가라고 물을지 모르나, 바로 그 점이 이들을 정서 파괴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시달리다 못해 결국 자기를 힘들게 하는 세상과 결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자와의 진정한 대화나 인연을 맺지 못한다. 성과를 촉구당하는 현실에서 정서 고갈의 상태는 필연적이다. 타자와의 정서적 교류와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람에게 균형 잡힌 감정적 판단이나 낙오를 극복할 수 있는 의지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상태가 한 사회에 번져나가면,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매우 폭력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되어버린다. 오늘날 아이들이 쓰는 말을 보면, 욕설이 일상어가 되고 있고 갈등 해결을 위해 쉽게 물리적 힘에 의존한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사람에 대한 성찰과 정서적 여유를 품위 있게 누리는 능력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와 같은 ‘너와 나’의 살벌한 형편은 우리의 마음을 방황하게 만들고, 주머니에는 언제나 피스톨을 뽑아들 준비를 하게 한다. 미국처럼 총기가 어렵지 않게 구해지는 상황이 아니니 결국 형태만 다를 뿐인 총구는 자신을 겨냥하고 만다.

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감정 그리고 느낌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 이성적 판단만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몸 전체로 느끼고 그 에너지로 상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이 생리적 체계가 피로에 찌들고 방치되면, 우리 모두의 생명은 위험해진다. 감정을 존중하는 사회, 느낌을 주목하는 인간관계가 지금 가치 있게 인식되어야 한다. 우울과 자살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감정의 복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노리고 만다는 것이니, 더는 이대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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