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것은 몰라도 인사 하나는 잘할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공사석에서 인사에 대한 소신을 여러 차례 밝힌 일이 있다.
“아니, 대통령이 왜 자신과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만 장관으로 써야 합니까? 대한민국에서 그 분야의 최고 실력자를 발탁해서 쓰면 되는 것 아닌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말하면 믿지 않을 방도가 없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직 인사를 꽤 잘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의원들을 능력만 보고 적절히 기용했다. 김무성 사무총장, 김재원 기획위원장 등이 그렇게 발탁됐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만 골라서 쓰고 있다. 최고 실력자를 발탁하지도 않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박근혜 인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검증된 사람들 중에서 적임자를 뽑는 것은 탁월하다. 한나라당 당직 인선은 기본적으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를 고르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뒤에는 ‘검증된 인재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사를 잘할 수가 없다. 청와대는 인사 실패 이후에야 분야별 인재풀을 확보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둘째, 새로운 사람을 보는 안목은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11월 서울디지털대학교 부총장 황아무개씨를 자신의 디지털 특보로 임명했다. 황씨는 다음해 5월 학교 공금 3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잘 모르는 사람을 한두번 만나보고 너무 쉽게 빠져드는 소녀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종훈·한만수 등 깜짝 발탁자 대부분이 이런 범주라는 설명이다.
셋째,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이 있다. 이 대목은 일종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20대 ‘퍼스트레이디’ 시절 겪은 최태민 목사 사건, 아버지 사후 배신을 당한 경험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와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은 물론이고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측근들을 끝까지 감쌌다. 지금도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넷째, 한국 사회의 이른바 주류에 대한 거부감이 엿보인다. 장관 인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비주류 인사들을 곳곳에 끼워 넣으려 한 흔적이 있다. 국방부 장관에서 낙마한 김병관 후보자, 해양수산부 윤진숙 후보자 등이 그런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 관료, 보수언론 등 기득권 집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측근들의 일치된 견해다. 문제는 이런 주류 견제 의도가 좀처럼 관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쨌든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인사는 대략 마무리됐다. 마지막 관심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인지 여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야당 지도부한테 구차할 정도로 윤진숙 후보자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청문회에 나와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야에 여성을 발탁해서 키우려던 생각이었다’, ‘쌓은 실력이 있으니 지켜보고 도와 달라’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윤진숙 후보자는 15일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무적인 능력이 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식물장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 데 대해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라고 반발했다.
정무직 공무원인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정무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장관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언제나 존중해야 한다. 국무총리도 집권 여당 원내대표를 그런 표현으로 비난하지 못한다. 윤진숙 후보자의 무감각은 놀라울 정도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윤진숙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면 이한구 원내대표는 진짜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스킨십 정치’…박근혜가 변했다? [한겨레캐스트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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