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영국 스포츠계의 전통 중 하나로 ‘1분간의 묵념’이 있다. 거물급 공인이 숨졌을 때 선수들과 관중이 다 함께 1분 동안 애도의 시간을 갖는 의식이다. 엊그제 메이저리그 경기에 앞서 미국 야구선수들이 ‘보스턴 국제마라톤 폭탄 참사’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한 것도 유사한 추모의례다. 영국 축구계가 최근 이 일로 논란에 휩싸였다. 주말의 축구경기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에 대한 1분간의 묵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영국병을 고친 ‘탁월한 국가대표팀 주장을 잃었다’며 묵념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쪽이 있었던가 하면,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양극화를 불러온 그에게 묵념을 하는 것은 ‘수치이자 모든 축구팬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격렬히 반대하는 쪽도 있었다. 이런 상반된 태도는 실상 축구계만이 아니었다. 언론·정치·시민사회·지역 등 거의 영국 전역에서 나타났다.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하는 영국 프로축구리그 연맹은 마침내 묵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축구계의 1분간의 묵념은 끝내 없었다. 축구연맹의 결정에는 대처 정부 시절 ‘훌리건이란 오명을 받으며 핍박받았다’는 축구인들의 옛 기억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맹이 묵념을 하기로 결정했어도 축구장에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고 영국 버밍엄대 로버트 페이지 교수가 전했다. 특히 대처 정부 때 남동부에 견줘 소외됐던 리버풀 등 북서부 지역 도시에서는 팬들의 거센 저항마저 예상됐다. 이런 풍경은 1963년 존 에프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불의의 죽임을 당했을 때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케네디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축구클럽과 팬들은 그를 기려 기꺼이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축구장 한가운데에 모였고, 심판의 호각을 신호로 관중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사망 이후에도 정치와 언론, 스포츠 등 영국 사회의 전 부분과 세계의 여론까지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낳고 논란을 불러온 인물이 유사 이래 대처 외에 또 있을까? ‘영국병의 주치의, 냉전을 끝낸 자유의 투사, 유리천장을 깬 여성 리더’란 찬사와, ‘영국을 파괴시킨 자, 탐욕과 분열을 일으킨 인물, 반노동·강경대외정책으로 큰 상처를 준 마녀’ 등 혹평의 사이에 대처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런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에는 기실 ‘세상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시선’의 대립이 놓여 있다.
“세상에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남자와 여자인 개인들과 가족들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발언에는 ‘철의 여인’이 견고하게 세운 우파의 세계관, 신자유주의가 압축돼 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유보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는 평등도 자유도 얻지 못한 채 붕괴할 것”이라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하며,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에게도 전승돼 그에게 ‘대처의 아들’, 또는 ‘블레처리즘’이란 불명예를 얻게 하기도 했다. ‘위기의 대한민국, 대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대처 배우기에 힘써온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로도 잇대어진다.
영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신자유주의 가치관이란 바벨탑을 세웠다는 점에서 대처는 가히 혁명가에 가깝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주춤하고 있지만 대처가 세운 탑은 세계 곳곳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며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의 보수혁명은 복지국가나 연대주의란 다른 시선에선 물론 ‘반혁명’이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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