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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국가대표 강박증 / 박권일

등록 2013-04-22 19:10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최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싸이의 ‘젠틀맨’에 관한 글이 두 개 실렸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싸이의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와 그에 대한 반론인 최종덕 상지대 교수의 ‘‘포르노 한류’? 왜 싸이만 돌 맞아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두 글을 같이 놓고 보면 무척 흥미로운 맥락이 생겨난다. 전혀 다른 얘길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유사한 논리를, 그것도 한국 사회에 보편적인 어떤 멘탈리티(사고방식, 심리)를 강박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이다.

먼저 정 교수의 글. 그는 “국위선양만 하면 아무리 선정적이어도 상관없느냐”고 하면서 “외국 언론이 ‘젠틀맨’을 다뤄주니 감사하고, ‘젠틀맨’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면서 ‘자뻑’하는 분위기”라고 못마땅해한다. 또 그는 싸이 음악의 ‘국적성’도 문제 삼는다. “싸이는 한류의 전도사라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한단다. 그런데 싸이의 음악, 싸이의 춤이 과연 한국의 것인가. 사실 이거 몽땅 미국 것 아닌가. 미국 사람들이 싸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한편 최 교수는 “싸이의 선정성은 분명히 선정적이지만 우리 사회에 깔린 범선정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나는 왜 싸이에게만 저급하게 욕도 하지 말고 선정적이지 말아야 하고 미국 냄새를 풍기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주문은 우리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소위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자칭 지도자급에게 그런 주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미에 그는 “‘젠틀맨’이 좀 선정적이고 저급하다고 해서 한국 전체가 ‘젠틀맨’에 휩쓸린다면 한국은 너무 작은 나라로 입증될 뿐”이라 덧붙였다.

정희준 교수는 문화적 엄숙주의자가 아니다. 지금껏 써온 글은 대체로 진보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었다. 최종덕 교수 역시 보수주의자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두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뿌리 깊이 내면화된 내셔널리즘이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정 교수의 멘탈리티가 ‘탈식민형 내셔널리즘’이라고 한다면 최 교수의 것은 ‘자아비판형 내셔널리즘’이다. 탈식민형 내셔널리즘은 주체성을 중요시한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문화라도 ‘우리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흉내라면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자아비판형 내셔널리즘은 대중문화는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소박한 반영론을 바탕으로 한다. 대중가수 한 명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저질인 게 더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양자는 공히 싸이가 ‘세계 각국 가수들과 경쟁하는 한국의 대표 가수’라는 프레임 자체에 대해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누가 싸이를 한국의 대표로 임명했나?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가수, 화가, 학자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그들 모두를 ‘국가대표’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국가대표로 지목된 개인 대부분은 ‘영광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가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도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국위선양 논리에 부화뇌동하는 언론보다 훨씬 더,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촌스러운 행태는 모든 유명한 개인들을 국가대표로 만드는 짓이다. 김연아와 리오넬 메시는 소속 국가의 상징물이 아니라 그냥 탁월한 지구인이다. 싸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내셔널리즘을 이용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를 국가대표가 아니라 그냥 한국 출신의 뮤지션으로 대하는 게 옳다. 역사는 조용히 말해준다. 국가적 영웅이 많은 사회는 국가적 비극이 많은 사회이다. ‘탁월한 개인’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행태는 자칫 자질이 떨어지는 개인을 배제하는 논리로 전화하기 쉬운 까닭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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