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작가 공지영은 카이스트 강의에서 “사이코패스가 가장 많은 분야가 과학기술계와 금융계”이고, 이는 “인간이 아닌 물적인 것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자들은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집단으로 전락했고, 그 대안은 “소설을 많이 읽자”였다. <사이코패스의 지혜>라는 책을 보면 사이코패스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10개 직업군 어디에도 과학기술자는 없다. 오히려 경영자, 법률가, 언론인이 상위 3개 군을 형성하며 소설을 읽을 것 같은 분야에 사이코패스가 더 많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근대과학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논거로 “버블경제의 추락을 예견조차 하지 못”하고, “지진과 해일이 코앞에 닥쳐와도 아무런 징조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근대과학은 위대한 만큼 이토록 초라하기 때문에, 그는 대안으로 역술원을 추천했다. 지난해 이탈리아 라퀼라 법원은 2009년 지진 예측에 실패한 혐의로 과학자 6명에게 금고 6년형과 약 129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교훈은 고미숙의 발언에도 경종을 울린다. 현대의학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고미숙의 책을 읽고 역술원에 의존하다 사망한다면 그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정신분석학은 근대 이후에 등장한 과학적 주체의 토대를 그 근본부터 허무는 무기”이며, “과학, 정치, 예술, 사랑은 모두 공가능적 진리들의 절차”라고 말한다. 그가 무기로 삼는 정신분석학의 대가는 “현대철학자들치고 영향 받지 않은 이가 없다”는 라캉이다. 라캉의 글은 난해하기로 유명한데, 이택광은 “라캉이 주이상스를 윤리-인식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근대과학이 주체의 과학을 통해 교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요약한다. 여기서 주체의 과학은 정신분석학이다. 이 난해한 문장을 쉽게 풀자면,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근대과학의 오류를 수정해줄 수 있는 대안이라는 뜻이다. 한때 열렬한 라캉주의자였던 딜런 에번스는 <라캉에서 다윈으로>라는 글을 통해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임상과 문학평론의 영역에서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현실을 고발하며, 임상의 영역에서 라캉의 이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공지영의 소설, 고미숙의 사주명리학, 이택광의 정신분석학은 모두 현대사회가 과학기술로 인해 불행해졌다는 전제 아래 등장하는 대안들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를 창조과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진화론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니 신의 창조를 믿어야 한다는 논리다.
철학자 레비 브라이언트는 이런 종류의 근거 없는 과학혐오를 ‘독단적 회의주의’라 불렀다. “주의 깊은 노동을 행할 필요도 없이 선험적으로 사물들을 거부할 수 있다고 믿을 때 회의주의는 독단적”으로 변질된다. 예를 들어 진화생물학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거부할 때 독단적 회의주의에 빠진다. 보통 과학적 지식이 생산되는 과정에 무지한 강단의 인문학자들이 이러한 함정에 쉽게 걸려든다. 인문학 위기에 대한 대응이 왜 과학을 희생양으로 삼는 마녀사냥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인문학이나 과학이나 경제적 실용성이라는 압력에 노출된 기초학문의 양면인데, 한국 사회의 지성적 반과학주의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현상이다.
한쪽은 과학자를 사이코패스로 낙인찍고, 한쪽은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떠받드는 정신병리학적 상황에 대해 라캉은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사회는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거치지 못했다. 철학자 김성환의 이 말에 실마리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을 아는 데 20년이 걸렸다. 아직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적을 존경한다. 이 마음을 책에 담는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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