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패면 아무 소리 못하고 곱게 맞는다. 꿇으라면 아예 엎드린다. 숙이라면 코가 바짝 땅에 닿도록 한다. 이게 오늘날 약자들의 생존방식이 되고 있다. “라면 상무”, “빵 회장”, 그리고 “조폭 우유”라는 말로 조롱당하는 강자들의 횡포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힘이 센 위치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억압하고 짓밟아도 된다는 권리로 착각하고 있는 세태의 추한 몰골이 여기에 담겨 있다. 그게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제 못 참겠다 꾀꼬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예전의 습성을 그대로 내놓고 부렸다가 이들은 여론의 질타를 뭇매 맞듯이 맞고 있다. 사실 진즉에 맞았어야 할 매였다. 이들은 상대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난리를 피운 모양이지만, 고쳐야 할 버르장머리는 도리어 저들에게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 답은 분명하다. 권력이 이들에게 거의 언제나 보호막이 되어 주고 문제가 생기면 저들의 편에서 약자의 항의를 묵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뭐가 무섭겠는가? “내가 누군데” 하는 의식이 꽉 차 있으니 눈에 뵈는 것이 없을 것이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도 그것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기고, “누구한테 까불어?” 하는 생각이 박여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단연코 “제왕의식”이 있다. 민주사회에서 이런 제왕은 낡은 폐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끊임없이 불화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역할을 ‘자본’이 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경우는 사건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그리된 것이지만, 사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그냥 지나치고 있다. 무수한 노동자들이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되어 왔고 해고 이후 죽기까지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서는 그리 분노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 밖이다. 대한문 앞에서 몇 달이 넘게 항의집회를 하고 있어도 신경 끈 상태다.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 정도의 폭력을 넘어도 한참 넘는 상황이 아닌가? 누군가는 그리 말했다. “저게 뭐야, 몇 달씩이나 다들 보는 장소에서.” 그 몇 달 동안 아무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권력과 자본에 대한 질타는 그 말에 없다.
언론이 지금 호들갑 떨듯이 갑자기 생긴 문제처럼 대서특필하고 있는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더군다나 그 뿌리로 내려가면 더욱 위태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노동 현장에서 공해로 죽은 사람들을 비롯해서 대자본의 인명경시 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무응답으로, 거대 자본은 철저한 무시로 나가고 있다. 구조적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언론에서 비켜가고 있다.
이는 조직적 은폐다. 더 큰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발과 질타, 해결은 없는 사회가 그에 비하면 피라미도 안 되는 일에 열을 내고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위선 아닌가? 물론 그런 일들이 사소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 일에 이렇게들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보다 더한 일은 당연히 사회적 응징과 해결 모색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이렇게 되지 못하면, 라면 상무를 비롯한 이들은 “아, 왜 나만 갖고 그래.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는데, 나는 재수 없어 걸린 거지 뭐”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이러고들 있는 사이에 더 큰 폭력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한종호 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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