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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 / 전성인

등록 2013-05-15 19:23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00년 전 예수는 자신의 교회를 세울 사람으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를 선택했다. 바윗돌처럼 든든한 기초가 있어야 교회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덕분인지 기독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2000년을 지탱해 왔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직전 삼성은 부산 앞바다 모래밭에 자동차 공장을 지었다.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이건희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지반이 약한 갯벌은 계속 가라앉았고 삼성은 강철 파일만 수조원어치를 박았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자동차 공장은 결국 부도로 막을 내렸고 삼성그룹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는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초공사가 중요하다. 특히 마지막 일원까지 계산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금융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천연덕스럽게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금융회사가 있다. 수많은 논란과 경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론스타한테 돈을 주고 외환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가 바로 그 회사다. 최근에는 소액주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외환은행 주식까지 몽땅 사서 모든 우환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짓는 집이 기와를 화려하게 올린다고 가라앉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불법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불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금융지주가 처한 법률적 위험은 간단치 않다.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증거와 논란이 하늘을 찌를 때, 위험을 무릅쓰고 론스타에 돈을 주고 ‘종잇조각’을 넘겨받았다. 이 종잇조각이 외환은행 주식일 수 없는 이유는 애초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거래가 우리나라 은행법의 거의 모든 소유규제 조항을 위반한 불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론스타로부터 얻은 것이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점을 엄중하게 받아들일 경우 그 이후의 하나금융지주의 행동이 얼마나 위법한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하나금융지주가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외환은행 주식 6.25%를 인수한 것은 위법한 것이다. 왜냐하면 금융지주회사법은 자회사 편입 때 3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주식은 그에 훨씬 미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자회사 편입이 아니라 금융지주회사법이 금지하는 계열회사 주식 취득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취득 지분이 5%를 초과하기 때문에 금산법 제24조를 위반한 형국이 된다. 금산법 제24조를 위반하여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면 그 이후 하나금융지주의 거의 모든 법률행위는 하나같이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결의한 지난 3월15일의 주주총회 결의는 위법할 뿐만 아니라 부결된 것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의결권이 없고 제2대 주주인 한국은행은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는 론스타가 은행 주식을 보유할 수 없는 비금융주력자였다는 데서 연유한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를 무시한 채 론스타한테 돈을 주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외환은행에 대한 지배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가 저지른 엄연한 위법을 외면한다고 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파묻는다고 몸통이 가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하나금융지주는 모래 위에 집을 짓고 허공에 다리를 거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무모한 결정을 추진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만이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길이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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