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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원전에 월반 없다 / 이유주현

등록 2013-05-19 19:31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1971년 11월 부산 기장군 장안읍 벌판에 중절모에 도포 걸친 이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 착공식을 보러 온 구경꾼들이었다. 당시 단일 사업으론 가장 큰 돈(1560억원)이 들어간 원전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금과 같은 주민 반대 시위는 꿈도 못 꿨다. 변준연 한국전력공사 부사장은 “그때만 해도 주민들은 원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지역의 식당·술집·여관 모두 돈이 도니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 무렵, 한국보다 10년 먼저 원전을 시작했던 캐나다 정부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핵연료 쓰레기를 치울 방법이 없어서였다. 고민하던 캐나다는 1974년 수억년 전 형성돼 지반이 안정적인 암반지대(캐나다순상지)에 폐기물을 묻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곧 반대에 부닥쳤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인구 140만여명의 북미 원주민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대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눈앞의 이득에 팔려 삶의 원천을 해치고 싶지 않다”며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 정부의 설득이 먹힐 리 없었다. 결국 캐나다는 핵과 관련한 정책을 세울 때는 반드시 원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법제화시켰다. 캐나다는 아직도 부지 선정을 마치지 못했다.

한국여기자협회의 연수프로그램으로 이달 초 캐나다·미국의 원자력 현황을 살피고 돌아왔다. 두 나라 모두 에너지원이 다양해 원자력에 목매는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캐나다는 총 전력생산량 중 원자력 의존도가 15%, 미국은 20% 정도다. 한국은 35%쯤 된다. 국민들 인식도 나쁘지 않다. 미국 원자력에너지협회(NEI)의 자료를 보면, 응답자 74%가 ‘원자력은 안전한 에너지’라고 답했다. 후쿠시마원전 참사 이후에도 원전에 대한 호감도는 고작 3%포인트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이 단체의 홍보 담당자인 스티븐 케레케스는 “본래 슈퍼볼 중간광고 등을 비롯해 홍보비로 매년 300만달러씩 쓰던 것을 후쿠시마 직후 350만달러로 늘렸다가 여론이 호전돼 원상회복시켰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 역시 골치가 아프다. 미국은 100여기의 원전에서 매년 나오는 2000t의 핵연료 쓰레기 처리를 위해 2002년 네바다주 사막의 유카산에 영구폐기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9년, 지역 주민 반대를 이유로 들어 유카프로젝트를 무효화했다. 오바마의 결정으로 유카 공사에 들어간 10억달러가 날아갔을 뿐 아니라 원전 사업자들의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연방정부는 지난 2월 메인주의 양키 원전에 1998~2002년 사이의 핵폐기물 보관 비용으로 817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법원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정부는 애초 양키 원전 폐로 이후 공장 터의 핵쓰레기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유카프로젝트가 취소되자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고, 원전은 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은 ‘원전 전도사’로서 한국을 방문했다. 테라파워는 한번 핵연료를 넣으면 5~15년 동안 가동되고 폐기물도 획기적으로 줄이는 ‘4세대 원자로’를 2022년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빌 게이츠니까 ‘꿈의 기술’로 ‘월반’할 수 있을까? 원자력에너지협회 간부인 짐 콜거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워낙 ‘빅 가이’(Big Guy)니까 서류 한 장 들고 전세계를 다니며 펀딩 받는 게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기술 개발에도,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승인을 얻는 데에도 엄청, 엄청, 엄청 많은 시간(lots of, lots of, lots of years)이 걸린다. 미국 정부 승인이 나지 않은 원전을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수용하겠나?”

이유주현 국제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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