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칼럼니스트
일본의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하 재특회)이 “한국인이 보이면 돌을 던지라” 외치고 “바퀴벌레 조선인을 추방하자”고 선동하며 공항에서 한류 연예인의 입국을 막는 등 크게 물의를 일으키며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며 내게 인터뷰와 조언을 요청한 일본 저널리스트들이 공히 언급하는 단체도 재특회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삼아 지지를 모으고, 저열한 욕설을 자주 구사하며, 인종주의 담론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재특회와 한국의 일베는 무척 유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베만 주목해서는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2010년에 ‘뉴라이트에서 네오라이트로? 한국의 반이주노동 담론 분석’이라는 글에서 인터넷의 반이주노동자 담론을 유형화한 적이 있다.(2012년 <우파의 불만>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들 ‘네오라이트’들은 진보좌파세력뿐 아니라 거대 보수정당과 정부기관들에까지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챙기지 않고 다문화주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한국의 진보나 보수는 한통속이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의 담론은 어쨌든 나름의 근거를 들어 자국민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베의 담론은 전라도 비하, 여성 혐오, 인종주의적 욕설로 일관하면서 사람들을 말초적으로 자극하지만 정작 현실 권력에 대해선 입도 벙끗하지 못한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와 일베를 신우익의 맹아 단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 운동으로 발전하진 않았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들은 ‘온라인 한정’이라는 점에서 일베와 비슷하다. ‘언어의 저렴함’에서 일베와 유사한 재특회가 오프라인 시위를 활발하게 개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익과 신우익이 각각 조직으로 활동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통 우익의 나라’다. ‘반공 우익 노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거리에 나와 폭력을 휘두르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종북좌파 인사” 운운하는 문건들이 폭로되며 국가정보원이 여전히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정황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당정치와 분배구조가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정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대중을 위무해 주느냐의 게임이 되기 쉽다. 모두에게 ‘빵’을 주진 못하지만 ‘2등 국민’을 차별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짓을 방치함으로써 불만을 해소시키는 일종의 극장형 사회가 되는 것이다.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의 논리와 일베의 열기가 결합한다면 가까운 미래의 한국에 명실상부한 네오라이트, ‘한국형 신우익’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정서를 정치적 언어로 대변해줄 매력적인 정치인이 등장했을 경우 그 화학반응은 그야말로 가공할 수준일 것이다.
재특회,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일베 등을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상상된 착취’(imagined exploitation)가 아닐까. 당연히 받을 몫을 ‘내부의 타자’에게 빼앗겼다는 박탈감. 그래서 나보다 ‘자격’과 ‘능력’이 없는데 몫을 더 받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을 찾아내고 공격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이 ‘상상된’ 착취인 이유는 실제 착취하고 배제하는 주체는 내부의 타자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격 있음/없음’과 ‘유능/무능’을 인준해주는 주체가 바로 자본과 국가인 까닭이다. 재특회와 일베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물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남한테 큰소리 한번 못 내는 평범한 시민이다. 만약 괴물이 있다면, 평범한 시민 상당수가 저런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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