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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정치 포르노 / 김종구

등록 2013-05-22 18:45

매춘부(pornoi)와 그림(graph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포르노그래피(pornographer)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1500년에서 1800년 사이 근세 초 유럽에서 포르노그래피는 종교적·정치적 권위를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정치 포르노(political pornography)란 말도 생겨났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왕족과 성직자, 귀족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묘사한 포르노물은 왕권과 교회를 희화화시키며 앙시앵 레짐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공격의 집중 대상이 된 인물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왕비의 난잡한 성생활을 다룬 <취한 오스트리아 여인>은 당국의 집중 단속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런 포르노 소설은 평민도 왕비의 육체를 통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연상 작용을 일으켰고, 왕위 계승자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왕권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샤를로와 투아네트의 사랑> 같은 소설은 루소의 <사회계약론>보다 훨씬 많이 읽혔고, 프랑스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사의 권위자인 린 헌트는 “포르노와 혁명은 불편한 동침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정치 포르노물은 프랑스혁명이 끝나면서 사라지고 성적 쾌락 자체를 위한 도구로 바뀌어간다.

일부 종합편성 채널의 ‘5·18 북한군 개입’ 보도를 두고 ‘정치 포르노’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지저분한 정치적 의도를 지닌 허무맹랑한 보도를 꾸짖는 말로 이처럼 적절한 표현도 달리 없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따져보면 이 보도는 정치 포르노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치 포르노가 나름대로 성적 평등사상을 기초로 기득권층의 특권과 가식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 것에 비하면 5·18 북한군 개입 보도는 ‘정치적 쓰레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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