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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통일은 잊어라 / 김규원

등록 2013-05-26 19:13

김규원 통일외교팀장
김규원 통일외교팀장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근래에 한국으로 온 북한의 한 고급 공무원을 만난 일이 있었다. 기자들이 그에게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이냐? 3대 세습이 잘될 것 같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3대 세습이 아니라, 4대, 5대까지 갈 것으로 봅니다.”

김정은 체제는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무기 실험에 모두 성공했다. 부인 리설주씨를 앞세워 젊고 친근한 이미지도 만들었다. 지난주엔 최측근인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 대화를 바란다”고 말했다. 머잖아 한국,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될 것이다.

한편으로 김정은 체제가 안정됐다는 말은, 통일의 시기가 상당히 멀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 제1비서는 1984년생, 29살로 추정된다. 할아버지가 82살, 아버지가 70살까지 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치세는 적어도 30~40년을 더 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남북한의 위상은, 김일성 주석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킨 1950년대나, 김 주석과 박정희 대통령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인 1960~70년대와 크게 달라졌다.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북한의 38배, 군사비 지출은 10~30배에 이르렀다. 현재는 남북한의 연합이든, 연방이든, 통일이든, 한국이 주도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김정은 제1비서를 비롯한 북한의 지도부가 당분간 통일을 시도하거나 통일에 동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현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한국 입장에서도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장의 2010년 연구를 보면, 북한이 한국에 흡수통일될 경우, 통일 비용은 30년 동안 2200조~5500조원, 한해 평균 73조~183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2013년 한국 정부의 예산 342조원의 21.3~53.5%에 이르는 것이다. 거의 불감당이다.

실제로 22년 전 통일한 독일의 경우도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 동안 통일 비용으로 1조4000억유로(2100조원)를 투입했다. 이것은 매년 140조원씩, 독일 정부 예산의 25~30%를 쏟아부은 것이다. 통일 당시 서독의 1인당 소득과 국내총생산은 각각 동독의 2.1배, 8배 수준이었다. 반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북한의 19배, 국내총생산은 38배에 이른다. 이것은 북한 경제와 주민 소득을 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독일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 통일을 꿈꾼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그것은 북한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4만7400원이었다. 한국 정규직 노동자의 17분의 1, 비정규직 노동자의 10분의 1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싼 임금으로 이렇게 우수하고 말이 잘 통하는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을 고용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도 가져올 수 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경제 발전이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가져왔듯, 북한의 경제가 발전한다면 결국 북한 체제도 변화할 것이다. 그게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북한 체제가 변화한다면 그제야 남북간에 평화롭고 대등한 통일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또 북한 체제가 변화하지 않더라도 두 나라가 서로 평화롭게 지내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사실상 통일 아닌가.

김규원 통일외교팀장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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