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만담꾼 하선은 정적들에게 살해될 위험을 느끼는 임금 광해를 대신해 왕 역할을 하게 된다. 15일 동안 왕으로 지내던 하선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던 고관대작들이 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한다. 난폭한 광해와 달리 인간적 면모를 보이는 왕의 모습에 주변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그런 하선에게 마음이 움직인 광해의 책사 허균이 하선에게 제안한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이 진정 당신이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루어드리리라.”
대의와 명분을 말하면서 권력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500년 전 조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부여하고 의회와 언론을 통해 전횡과 부패를 막을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적 선진국일수록 정치인의 공익 추구와 사익 추구 사이의 간극이 좁다.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란 사적 목표가 공익적인 성과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잘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후진국일수록 정치인의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간의 간극이 넓고, 구체적 성과가 아닌 뿌리 깊은 편견이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권력자를 선택한다.
왕정시대 제왕의 성공을 위해서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책사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훌륭한 책사들은 사적 동기를 가진 군왕을 공공선을 실현하는 정치가로 변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절제하고 공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 헌신했다. 하지만 공과 사를 혼동하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공적인 명분을 악용하는 간신의 존재는 왕정시대의 골칫거리였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창중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었을 때 좌우 모든 진영이 우려했다. 지난 대선 전 그가 보인 언행 때문이었다. 진보진영 후보들을 향해 매체를 통해 던진 언어들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고약했고 행동들은 저속했다. 권력자의 가려운 곳을 천박한 언어로 긁어주는 행동은 춘추전국시대에도 품격 없는 짓으로 경멸받았다. 최소한의 격조도 없는 노골적인 사적 이익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윤창중을 중용하고 그런 언행을 높이 평가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자 세상이 비릿한 말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공공연하게 모욕하는 최근의 사태는 이렇게 왜곡된 인센티브를 제공한 잘못된 신호에도 원인이 있다.
윤창중 사건이 공익을 무시한 노골적인 사적 이익의 추구를 권력이 수용할 때 벌어지는 비극적 결과를 보여준다면, 서울대가 추진중이라고 알려진 ‘창조경영학과’는 사익을 위해 어떻게 공익적 가치를 교묘하게 조작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서울대는 ‘창조경제’를 국가적 명제로 표방했으나 개념이 모호하고 구체적 실천이 어려운 정부 상황을 악용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관철시키려 했다. ‘창조경제’와 미래의 빌 게이츠가 그들이 주장하는 ‘체계화된 창업교육’을 통해 얻어진다는 주장은 체계화될수록 창조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에서 그런 몰상식한 주장을 하는 이유가 지적인 무지 때문이라면 슬픈 일이다. 그런 아둔한 선생에게 배우는 학생에게 창조적 미래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만약 국가적 과제라는 공익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입학정원 확대와 재정지원이라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노골적인 경멸과 분노를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담꾼 하선은 대신들을 보며 탄식한다. “도대체 이 나라가 누구 나라요?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간신들도 그럴 것인가?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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