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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일감 몰아주기, 왜 문제인가? / 박상인

등록 2013-06-10 19:40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에스케이씨앤씨(SKC&C)에 1조원이 넘는 일감을 몰아준 에스케이텔레콤 등 에스케이그룹 7개 계열사에 과징금 346억여원을 부과했다. 그런데 이 일감 몰아주기 사건은 역설적으로 현행 공정거래법 조항으로는 내부거래를 이용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규제하기 어려움을 보여줬다.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는 공정거래법 제23조에 규정되어 있다. 공정거래법 제23조는 이른바 불공정거래를 규율하는 조항들인데, 부당 내부거래도 형식적으로는 불공정거래의 한 유형으로 규정되어 있는 셈이다. 부당 내부거래 규제가 도입될 당시에 입법 취지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통한 경제력 집중의 방지에 있었으나, 재계의 반대로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들을 담고 있는 제3장이 아닌 제5장 제23조에 삽입됐다.

그 결과 부당 내부거래의 위법성 요건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방지라는 규제의 취지와 동떨어지게 되었다. 내부거래를 이용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는 터널링(tunneling)이라고 불리는데,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낮은 계열사의 사업 또는 거래 기회를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로 이전시킴으로써 일감을 준 계열사의 주주들에게 귀속되어야 할 이득을 총수 일가가 편취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터널링은 일감을 주고받는 계열사들의 총수 일가 지분율 차이를 이용한 사익편취 행위로, 거래조건이 반드시 일감을 받는 회사에 현저히 유리할 필요는 없다.

에스케이텔레콤의 에스케이씨앤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는 1994년 이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난해 이르러서야 부당 내부거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것은, 제23조의 위법성 기준인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였음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비로소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위법성을 회피하는 거래조건으로 에스케이씨앤씨에 일감 몰아주기를 지속한다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터널링을 방지할 방도가 현재로서는 없다. 에스케이그룹의 총수 일가는 에스케이씨앤씨의 지분 55%를 가지고 있으나, 에스케이텔레콤에는 지분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에스케이텔레콤의 사업 기회를 편취하려는 총수 일가의 터널링 유인은 매우 높다.

설상가상으로, 에스케이씨앤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법원에서도 위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삼성에스디에스 부당 내부거래 사건 이후 대법원은 부당 내부거래의 위법성 요건으로 ‘경쟁 저해성’을 추가했다. 터널링은 해당 시장의 경쟁을 저해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또 경쟁을 저해하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부당 내부거래가 제23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 저해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2012년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는 터널링을 위한 내부거래가 대부분의 재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총수 일가 사익편취를 위한 내부거래는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함으로써 재산권 보호와 건전한 주식회사제도라는 현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익편취는 또한 재벌 총수 일가의 세습에 악용되고 있으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잘못 끼워졌던 첫 단추는 결국 실효성 없는 부당 내부거래 규제로 귀결되었다. 터널링용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 조항을 공정거래법 제3장에 신설하는 것은 경제민주화 입법의 첫 단추를 바로 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런 신설 규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할 수 있는 제재가 함께 입법화되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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