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 집필노동자
고개를 위로 쳐들고 스크린을 올려다봐야 하는 낡아빠진 작은 극장에서 뒤늦게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보았다.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말이 많고, 그 말이 꽤 직접적으로 영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사채를 쓴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는 일을 하는 강도(이정진)가 “돈이 뭐죠?”라고 묻자 엄마라는 여자(조민수)가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사랑, 복수, 증오, 죽음…”이라고 답한다. 김기덕 감독이 친절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불친절함을 오히려 좋아했기에 <피에타>의 친절함은 개인적으로 덜 흥미로웠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내게 도달한 공포가 있었다. 그 공포는 영화 속 주인공인 잔인한 강도가 돈을 받기 위해 사람을 때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절단기로 팔을 자르는 가혹 행위를 해서가 아니다. 그도 물론 끔찍하지만 이보다 더 무섭게 나를 휘감은 공포는 따로 있었다.
영화의 많은 부분을 시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기계다. 비좁은 영세 철공소에서 무겁고 날카로운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이며 채무자’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에 첫번째 채무자는 실수로 기계에 손을 살짝 다친다. 그곳의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다칠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강도는 아무런 흉기 없이 주로 채무자들의 ‘노동 현장’에서 일을 처리한다. 그 기계를 굴리며 먹고살던 이들은 바로 그 기계에 의해 신체의 위협을 받는다. 게다가 마음이 흔들린 강도가 손을 자르지 않고 떠나도 보험금을 위해 제 손목을 절단기 밑에 넣는 채무자도 있었다. 강도가 해치지 않아도 스스로 몸을 잘라내는 비극을 통해 진짜 ‘인간백정’의 실체는 따로 있음을 드러낸다.
한 중년 남성 채무자는 강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죽기 전에 강도에게 묻는다. “자네, 청계천을 하늘에서 내려다본 적 있나?” 이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청계천을 내려다본다. 영화 <피에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청계천’이었다. 높은 빌딩 숲 사이의 낙후된 공간인 청계천 일대는 한때 한국 산업화의 중심지였다. 그 청계천에서 열다섯살부터 밑바닥 생활을 하며 사십년을 버텼다는 그 채무자의 삶은 마치 낙후된 청계천 일대처럼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도시의 번창에 기여했으나 정작 자신은 그 도시 속에서 빈민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사채 빚을 안고 있다.
많은 이들이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다시 제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그렇게 투자가 곧 빚이고 빚이 곧 소득이 되는 돌고 도는 굴레에 갇혀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굴레에 갇히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등급’을 받을 수도 없는 사람들. <피에타>에 등장하는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바로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 일종의 불가촉천민들이다. 가진 것이 몸뚱이밖에 없는 인간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사채를 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가촉천민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계층이동의 사다리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몸뚱이가 버틸 수 있는 날까지 살아가다 죽임을 당하거나 스스로 죽는 이들의 삶을 영화는 마치 순례하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압축 드릴을 든 지하철 건설자>라는 소련 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 속의 한 여성 노동자의 힘찬 모습이 생각났다. 그 모습은 ‘리얼’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다. 현실 속의 노동자들은 그처럼 멋진 모습으로 재현되기 어렵다. 노동하는 몸은 자주 위험에 처하고 삶은 고통스럽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노동이다. 살기 위해 노동하지만 그 노동이 삶을 위협한다. ‘인간백정’인 강도가 구원을 받든 받지 못하든, 이 착취의 기계는 굴러간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공포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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