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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정원 사건, 궤변의 바다에서 실종되나

등록 2013-06-21 20:10수정 2013-06-22 10:03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태풍의 한가운데선 바람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나라 밖에선 호들갑을 떠는데도 정작 우리는 무심하게 넘기는 일이 있다. 지난봄 북한의 위협이 그랬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정권이 흔들릴 사건인데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이 바로 그렇다.

국정원 사건은 시간대별로 하나하나 짚어볼수록 경악스럽다. 애초 큰일은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다.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장이 3년여 동안 선거 때마다 여당을 편들고 야당을 비판하는 여론을 조성하도록 지시하고 매일 그 결과를 챙겼다. 직원들은 지시대로 편향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소장 내용이다. 이런 일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국내정보 담당인 보안국(MI5), 프랑스 국내중앙정보국(DCRI)이 저질렀다면 그 나라에선 어떤 소란이 벌어졌을까. 정작 우리는 북한처럼 국정원도 으레 그런 곳이라고 여겨 무감각한 것일까.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대형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진작에 국정원의 선거개입 증거와 단서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이를 숨기도록 하더니, 급기야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조작된 중간수사 결과를 대선 직전에 서둘러 발표하게 했다. 결정적인 증거인 백악관 녹음테이프를 내놓지 않으려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닉슨 전 대통령보다 훨씬 적극적인 사건조작이다.

다음 단계인 검찰의 사건 처리도 결코 개운치 않다. 김 전 청장이 혼자 그런 일을 저질렀겠느냐는 당연한 의문에 대해, 검찰은 아무런 조사 결과나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증거인멸 위험’이 구속의 첫번째 사유라면 이번만큼 그 필요성이 큰 사건도 없는데, 정작 구속자는 없다. 국정원이 여론조작 흔적을 상당수 없애고, 검찰의 압수수색 현장에서 버젓이 경찰이 증거를 파쇄했는데도 그랬다. 덕분에 사건의 파장은 크게 줄었다.

‘이상한 나라’의 놀라운 풍경은 선거 개입, 조작·은폐, 사건 축소로만 끝나지 않았다. 지난주 검찰의 수사 발표를 전후해, 기이하게도 국정원을 편드는 주장은 더 거세졌다. ‘민주당이 전직 국정원 직원한테서 자리와 공천을 약속하는 대가로 제보를 받아 이번 사건을 터뜨렸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그런 진술을 받았다’는 우파 신문의 보도가 나오자, 여당이 ‘민주당의 정치공세’를 공격했고, 다시 우파 신문이 ‘검찰은 왜 민주당을 수사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주거니 받거니였지만, 엊그제 검찰 수사팀이 “그런 진술은 일체 없었다”고 밝히면서 ‘허공에 탑 쌓기’가 돼버렸다. 도둑 대신 엉뚱한 쪽에 주먹을 들이대다 빚어진 일이다.

‘북한과 종북세력의 사이버 활동을 감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정치관여 글의 숫자도 적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대북 심리전과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 감시를 맡았던 일선 조직을 빼돌려 대국민 인터넷 홍보활동을 하도록 한 것은 대북 감시와 무관하다. 전방 부대를 쿠데타에 동원한 꼴이기도 하다. 선거관련 글이 적다지만, 비슷한 내용으로 이미 삭제된 글은 바닷가 모래만큼 많다고 한다. 아직 조사중인 것도 있다. 무엇보다 365일 가운데 단 하루 물건을 훔쳤다고 해서 도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새누리당에선 공소장을 쓴 검사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폭로’까지 나왔다. 맹목의 마녀사냥이지만, 그런 막무가내가 이어지면서 사건의 본질은 갈수록 흐릿해진다. 여기에 더해 느닷없이 국정원과 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엔엘엘 발언 논란을 다시 들고나오면서, 국정원 국정조사를 놓고 대치하던 정국의 기류도 흔들리고 있다. 그 과정에 숨은 손은 없었을까. 때마침 대학가에선 국정원 사건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거리시위까지 벌어졌다. 국정원 사건의 실종을 막는 힘이 모일지 주목된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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