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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사회통합적인 정책협의체를 제안하며-①정책과 정치의 동학 / 이창곤

등록 2013-06-23 19:38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정책과 정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체로 ‘정치’라고 답한다. 맞다.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게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작동되지 않고선 어떤 정책도 서랍 속 빈말일 뿐이다. 그런데 이 물음 앞에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시 물어보면 답의 양상이 달라진다. ‘정치가 우선한다’는 이들도 여전히 적잖지만, 이번엔 ‘정책’이라고 답하는 이도 꽤 나온다. 새로운 정책 담론과 아이디어 없이 정치만으로는 ‘세상을 굴려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란 생각에서다.

기실 정치와 정책의 관계는 역동적이다. ‘정책과 정치의 동학’이라고 할까. 정치가 정책을 낳지만 거꾸로 정책이 정치를 낳는다. 정책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정책 집행은 역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새 정책이 집행되면 관련 국가기관의 역량이 변형 내지 강화되며(테다 스코치폴), 또 정책 집행은 그와 관련된 이익집단의 정치에 직접 영향을 준다(폴 피어슨). 그래서 새로운 정책은 새로운 정치를 창출한다(엘머 에릭 샤트슈나이더). 정책과 정치를 둘러싼 이런 명제들은 학자들의 ‘바른말’만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의 메커니즘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1990년대 초반의 한약 분쟁, 2000년의 의약분업 사태 등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정책의 관계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권에서는 정치(politics)와 정책(policy)이 다른 단어로 구분해 쓰이지만 독일어(politik)와 프랑스어(politique)는 한 단어다. 문맥에 따라 때로는 정치, 때로는 정책을 뜻한다. 이는 본디 둘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정책이란 ‘목적의식적 행동’ 없이 정치가 세상을 새로 열 수 없듯이 정치 없이는 사회 세력의 갈등을 조정할 정책을 선택·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정책과 정치의 이런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중요하고 균형있게’ 인식되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정책을 대놓고 폄하하거나, 아니면 정치를 지나치게 경시했다. 심지어 변혁과 새 정치를 외치는 이들조차, 평소 정책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도 레토릭과 실제의 간극은 매우 컸다. 사실 한국에 정책정당이라고 할 정당이 있었던가? 과연 누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정책을 내놓았느냐를 두고 다툰, 이른바 정책 선거가 있었던가? 정당은 자체적 정책 생산 능력이 여전히 결여돼 있고, 정책은 선거철에 반짝 수입하는 장식물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정당정부에 따른 정치 또한 작동될 수가 없다. 정책은 관료나 제왕적 대통령의 의지, 일부 의원의 개인기의 결과였다. 그러니 좋은 정책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과연 삶의 현장과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은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 자리를 빌려 하나 제안을 해볼까 한다. 정치권에 주요 정당 간의 ‘사회 통합을 위한 일상적 정책 협의체’ 같은 게 꾸려지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여의도연구소(새누리당)와 민주정책연구원(민주당), 진보정의연구소(진보정의당), 진보정책연구원(통합진보당), 정책네트워크 내일(안철수 의원) 등 각 당 및 세력의 싱크탱크 간 정책협의체가 그 시작일 수 있겠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핵심 정책 의제를 놓고 주요 정당 및 세력이 일상적으로 토론하고 협의하는 틀 말이다. 섣불리 합의하려 하기보다, 서로의 뜻을 더욱 명확히 아는 게 필요하다. 제 정당 정책협의체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범진보와 범보수 양쪽 진영 안에서라도 일상적 정책 협의체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9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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