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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변화의 기회 /김동조

등록 2013-06-24 19:20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북한의 경제적 붕괴가 시작된 것은 1992년부터였다. 92년은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서독이 통일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던 해다. 92년부터 98년까지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이행경제 체제하에서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지만 북한은 개혁과 개방에 대항해 자신들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갔다. 개방 대신 폐쇄를 택한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전무후무한 가뭄과 기근이 강타하면서 21세기를 앞둔 북한은 참혹한 내핍의 시대를 겪었다. 이러한 북한이 회복을 시작한 것은 99년이었고 2008년에야 비로소 98년의 경제 수준을 회복하게 된다.

최근 급성장한 중국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쯤밖에 되지 않지만,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인도와 베트남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적 궁핍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국방비에 대한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방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3% 미만인 것을 고려하면 너무 높다. 남북한의 경제 규모가 30배 가까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남북한의 국방비 격차는 이미 5배가 넘는다. 경제 규모가 30배 이상 적은 나라가 더 큰 나라와 국방비 경쟁을 계속하면 그 말로는 뻔하다. 북한은 경제 규모를 늘리거나 국방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기업들은 폭발하는 중국의 수요 덕분에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는 정책의 중심을 수출에서 내수로 옮기고, 과도한 투자 대신 저성장을 감수하며 내실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한테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세계적인 부동산 경기의 침체 속에서도 국내 건설경기를 지지해주던 4대강 사업도 끝이 났다. 이제 건설사들은 공급 과잉뿐 아니라 수요 부족과도 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연준은 양적 완화 정책의 축소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신흥시장으로 이동한 4조달러가 넘는 자금의 일부는 한국의 채권 금리를 하락시키고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 자금이 유출되기 시작하면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남북한 경제협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쪽이 북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개성공단은 월 20만원이 안 되는 저임금 북한 노동자들에게 의존하는 기업들이 참여했고, 개성공단이 폐쇄되어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남북 간의 경제협력은 우리 쪽에도 점차 절실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일할 곳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갖고 있는 광물자원은 세계 최대 수준이고 일본을 비롯해 북한에 투자를 하려는 나라는 여럿이다. 공산국가들이 이행경제 단계에서 보여준 빠른 생산성 증가와 높은 성장 속도를 고려하면, 남북한의 대규모 경제협력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1990년대 초 중국 정부의 본격적인 개방개혁 정책이 시작되자, 리덩후이와 천수이볜 같은 대만 지도자들은 대만 기업의 중국 투자를 막으려 했다. 이념에 근거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놓칠 수 없었던 대만 기업들은 그런 정책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으로 옮겨갔고 결과는 옳았다. 중국은 대만 자본의 도움을 받았고, 대만은 중국의 싼 노동력을 지렛대 삼아 경쟁력을 회복했으며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화 정책의 수혜를 즐기고 있다. 남북 간의 경제적 협력의 필요성은 점점 커져 어느 시점이 되면 자본의 역동성이 이념의 장벽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 시점을 앞당기는 정치적 현명함이 절실한 때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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