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놀랍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완벽한 승리다. 최경환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격투기의 고수들인 것 같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싸움의 기술을 체득하고 있다. 상대방의 약점 한 군데를 정확히 포착해 거기만 때렸다. 민주당은 방어에 급급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출발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는 확실한 악재였다. 그런데 댓글 사건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정상회담 대화록 입수 의혹’은 아예 실종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대화록 열람·공개 요구안이 통과되면서 민주당에 불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엔엘엘 발언 논란’만 남았다. 당분간 뉴스의 중심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 내용과 녹음파일 공개 여부가 될 것이다. 고인이 된 남북 정상의 육성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3일 아침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는 차분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황우여 대표는 장마와 재해 대책 얘기를 먼저 꺼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6월 국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애쓴 야당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대화록 공개 요구를 국민 의혹 해소와 국론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정몽준 의원은 초당적인 국정원 개혁위원회를 만들자고 했고, 이재오 의원은 국정원 국내정치 파트를 해체하자고 했다. 당직자들은 두 중진의 말을 무게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귀신들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조사는 잘될까? 그럴 리가 없다. 특별위원회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은 권성동 이철우 김재원 정문헌 조명철 윤재옥 김태흠 김진태 이장우 의원이 들어갔다. 국정조사보다는 야당과의 전투를 염두에 둔 진용이다.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철저히 진상 규명을 하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카더라식의 정치공세에는 적극 대응하여 국정원 국정조사가 또다른 국기문란 사태를 불러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라는 노골적인 주문이다.
민주당의 신기남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전해철 정청래 김현 진선미 의원도 싸움꾼들이다.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다. 여야는 2일 첫 회의부터 격돌했다. 특위는 앞으로도 처절한 싸움터가 될 것이다. 어쩌면 국정조사를 아예 못할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든 대화록 공개로 댓글 사건을 물타기 한 국정원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이번에도 조직 개편을 피하고 존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에 분노한 국민들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최경환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6월19일 “댓글 사건으로 새누리당이 덕 본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고 궤변을 폈다.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박근혜 후보의 수행단장을 지낸 사람이다. ‘박근혜의 남자들’이 새누리당 원내사령탑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댓글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번지는 것을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2일 국회 본회의 대화록 열람·공개 요구안 표결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 한 사람도 반대하거나 기권하지 않았다. 무서운 장악력이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새누리당 지도부는 동화 속의 ‘일곱 난쟁이’를 닮았다. 난쟁이의 임무는 물론 ‘백설공주’를 지키는 것이다.
다 좋다. 문제는 앞으로다. 국정원 조직을 지금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정보기관이 온갖 선거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정원은 이미 생존본능을 갖춘 괴물이다.
아니 그보다도 국정원을 그냥 두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과연 좋은 일일까? 정말 그럴까? 국정원이 언제까지나 지금 여당과 같은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사용자의 선의’로 국정원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가 지금 부관참시를 당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은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역사는 돌고 돈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shy99@hani.co.kr
새누리당의 ‘국정원 국정감사’ 어깃장 [한겨레캐스트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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