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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제한상영’을 헌재로 / 임범

등록 2013-07-08 19:37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그런 영화가 있을까.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지만,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아무나 막 보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영화. 그래서 못 보게 하거나, 보는 데에 제약을 줘야 할 것 같은 영화.(실정법에 위배되면 법으로 상영이 금지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행법(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 영비법)은 그런 영화가 있다고 전제한다. ‘그런 영화’에 대해 ‘제한상영가’ 등급을 줘 제한된 상영관에서 광고도 제한하면서 보게 하고 있다. 최근엔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그런 영화’로 분류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논란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일었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라는 것도 있었고, “‘그런 영화’를 상영할 상영관이 없다”라는 것도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런 영화’를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트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그런 영화’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그럼 ‘그런 영화’가 정말 있는 걸까. 먼저 실정법을 보자. 우선 형법의 음란죄가 있다. 제한된 범위 안에서 포르노물의 유통과 상영을 허용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엄격해, 포르노물의 유통과 상영을 허용한 적이 없다. ‘제한상영’ 제도가 도입된 뒤, 제한상영관 몇곳이 포르노물 대신 케이블 텔레비전 성인채널에서 방영되는 수준의 성인물을 틀다가 쫄딱 망했다. 외국의 경우라면 포르노물을 ‘그런 영화’의 범위 안에 넣겠지만,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명예훼손죄가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받는다. 국가 기밀을 누설하면 간첩죄가 될 수도 있고, 반국가단체를 편들면 이적표현물이 된다.

이런 법들을 다 지켰는데도, 아무 어른이나 막 보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영화? 영비법을 보자. 영비법의 제한상영 조항은 2008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제한상영 대상이 되는 영화(‘그런 영화’)가 뭔지 분명히 밝히지 않아 헌법에 위배되니 고치라고 했다. 당시 법 조항은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라고 해놓고, 하위 규정에서 “내용 및 표현기법이… 과도하게 일반 국민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반사회적인 경우”라고 했다. 이걸 고쳐 새로 만든 법 조항은 이렇다. ‘선정성·폭력성·사회적 행위 등의 표현이 과도하여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선전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한 영화.’

명확해진 건가. <뫼비우스>를 대입해 보자. ‘근친상간의 과도한 묘사’가 문제됐단다. 근친상간이라니까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을 거스르는 것 같지만 ‘근친상간을 조장하는 묘사’와 ‘근친상간을 위태롭게 보이게 하는 묘사’가 또 다를 거다. 김기덕 감독이 근친상간을 조장하려고 그런 묘사를 했을 것 같진 않다. 새 법조항의 추상적인 표현으로는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제한상영관이 있다 한들, 제한상영관에서 틀려고 영화를 만들까. 자기 영화가 인륜에 반한다는데, 반사회적이라는데 말이다. 돈 벌려고 포르노물을 만들 수 있겠지만 아까 말했듯 한국에선 불법이다. 그러니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면 다투거나, 아니면 문제된 부분을 잘라낸다. ‘그런 영화’가 뭔지 불분명한 채로 제한상영 규정은 검열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게 이 조항의 진짜 의도인지도 모른다. 이 조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문을 보면, 표현을 명확히 하라는 것 외에 이 조항이 과연 필요한지 따져보라는 취지도 엿보인다. 그걸 무시하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법조문만 바꿔놓았던 건데, 이 조항에 대해 헌법적 다툼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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