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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성공한 쿠데타와 성공한 선거공작

등록 2013-07-10 19:09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1971년 4월 7대 대통령선거 후일담이다. 김대중 후보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만났다. “선거 치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 부장의 어설픈 공치사에 김 후보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중앙정보부장인 당신에게 진 거요.” 당시 박정희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휘했던 것은 중앙정보부의 이후락 부장이었다. 중정의 손길은 개표 과정에까지 미쳤다.

박정희의 중정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 두 명의 대통령 시절을 제외하곤 정보기관은 매번 대선 공작에 나섰다. 13대 때 지역감정에 불을 질러 영남 표를 결집시킨 노태우 후보의 광주 유세 때 폭력 난동은 안기부가 운용하던 폭력배들이 주도했다. 8개월 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14대 때 안기부는 해방 후 최대 간첩단이라는 이선실 사건을 터뜨렸다. 선거가 끝나자 이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15대 대선에선 권영해의 안기부가 북한군에 총격을 유도하는 이른바 총풍 사건을 공작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중무장한 북한군의 휴전선 도발이 여당의 압승으로 이어진 것에 고무된 공작이었다. 공작의 성공은 여당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고, 대개의 공작은 성공했다. 단 한 번 권영해의 총풍 공작이 미수에 그쳤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낙선했다.

이런 대선 공작을 이명박 정권이 부활시켰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권영해처럼 이른바 ‘종북세력’과 아말렉 전투를 벌였다. 단순한 댓글 달기 차원이 아니었다. 더 큰 것은 야당 후보와 야권을 종북으로 낙인찍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작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서해 북방한계선을 헌상한 노무현과 그 무리’로 낙인찍을 목적으로 대화록을 발췌, 변조, 유출한 것이었다. 그 효과는 컸다. 선거는 엔엘엘을 포기했나 안 했나, 종북인가 아닌가 따위의 야권에 지독하게 불리한 구도로 진행됐다.

이런 공작은 곁가지라 할 댓글 공작이 드러나면서 표면화됐다. 10월 국정감사 때부터 저강도로 진행되던 대화록 공작이, 댓글 사건이 폭로되면서 이를 덮기 위한 권영세 상황실장의 이른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으로 활용된 것이다. 김무성 의원은 투표 이틀 전 부산 지원유세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누군가 전해준 대화록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그것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지면서, 많은 유권자는 ‘엔엘엘을 포기한 대통령의 비서실장 문재인’이라는 선입관 속에서 투표장으로 갔다.

이 성공한 공작을 검찰이 손을 댔다. 이미 드러난 것이기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국정원과 경찰이 인멸한 증거를 되살리고 찾아내 전 국정원장과 전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했다. 청와대는 난감했다.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이 밝혀지고, 또 이를 은폐 조작하려던 공작이 사실로 드러났으니, 집권의 정당성에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 발췌록과 전문을 공개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박근혜의 국정원도 공작에 나섰다.

사실 맹목적인 친정부 매체와 아둔한 민주당의 존재는 이번 공작을 성공으로 이끄는 듯했다. 특히 민주당은 제 발로 엔엘엘 포기 진실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불법 대선공작과 대통령기록물 불법 공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불씨가 살아 있게 한 건 오로지 전국 대학의 교수 시국선언 등 시민사회의 양심이었다. 이들은 일쑤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민주당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짜증스럽다. 지금의 상황을 소모적 논란이라고 조롱했다. 그런다고 선거 결과가 뒤집히겠는가? 공작처 국정원에 대해선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이 알아서 할 것이니 정치권은 간섭하지 말라. 조폭에게 저의 개혁을 맡긴 셈이니, 조폭은 어떻게 조폭 짓을 쇄신할까?

아버지는 성공한 쿠데타로 권좌에 올랐다. 그 딸은 52년 뒤 선거로 권좌에 올랐다. 성공한 대선 공작이 일조했다. 9년 전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선거 중립의 의무를 어겼다는 게 이유였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성공한 대선 공작도 성공한 쿠데타처럼 처벌할 수 없다고 우길 건가.

곽병찬 논설위원,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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