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 집필노동자
내 코가 석자라서 남의 외국어 실력에는 관심 없다. 나의 관심은 외국어 실력이 아니라 외국어를 사용하는 태도에 있다. 가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나와 소통할 수 있는데도 굳이 두 사람 모두에게 외국어인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프랑스인을 만날 때 영어로 말하기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언어는 단지 소통수단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외국어 사용은 일상에서 자아도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외국어는 과시의 도구로도 적절히 활용되고 지적 허영을 드러내기에도 좋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확한 개념 전달을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어도 ‘외국어를 좀 섞어주는’ 버릇이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권력이 되고 정치적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미국 대선 후보였던 민주당의 존 케리와 공화당의 밋 롬니는 프랑스어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현재 프랑스 총리인 장마르크 에로가 총리 후보로 거론될 때 그의 장점으로 꼽힌 것은 그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독일과 함께 유럽의 경제 위기를 해결할 짐을 떠맡은 사회당 정부는 독일에 호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언어는 이렇게 그 자체로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외국어에 애정을 가진 인물이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를 구사한다고 ‘알려진’ 박 대통령은 방문하는 국가마다 그 국가의 언어로 말하기를 참 좋아한다. 대통령이 미국에서 영어 연설을 하고, 중국에서 중국어 연설을 해서 외교에 도움이 된다면 그의 독특한 외국어 사랑을 말릴 이유는 없다. 그런데 방문 국가의 언어로 국가수반이 연설을 해서 효과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다면 왜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외국어 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박 대통령의 외국어 사랑은 ‘외교용’이라기보다 ‘외국어 잘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국내용’에 가깝다.
얼마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피로 지킨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진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박정희·전두환 두 전 대통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그 ‘피’를 흘리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가해자다. 새누리당이 그 계보를 잇는 정당임을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발언이야말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작년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는 발언도 했다. 어느 정도 역사와 법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다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또한 ‘국정원 선거개입’은 덮어두고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사건’으로 본질을 흐려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동참, 혹은 앞장서고 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인권이라는 언어를 국민을 속이는 도구로 활용할 줄은 안다.
자국어로 자국민과 정확한 소통은커녕 이렇게 왜곡과 기만, 견강부회로 무장한 대통령이 외국에서 외국어로 말하기에 집착한다. 대선 후보 시절 지하경제 ‘양성화’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지하경제 ‘활성화’라고 하거나,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했던 황당한 말실수는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실한 역사인식과 국민을 기만하는 태도가 가득 담긴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이다. 외국어 실력은 대통령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 아니지만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은 필수 조건이다. 외국어 이전에 한국어로 국민과 말이 되는 소통을 하길 원한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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