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론]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에 분노해야만 하는 이유 / 권영국

등록 2013-07-15 19:18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 제품의 하자를 수리하거나 제품을 설치하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이다. 그 절대적 지분(삼성전자가 99.33% 보유)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별개의 기업이라기보다 하나의 기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2012년 당기순이익은 23조845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상장사의 37%를 차지하는 것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삼성전자가 천문학적 규모의 매출과 순익을 자랑하는 가운데, 지난 6월17일 그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리 기사들과 콜센터, 접수상담원 등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의 직원이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에 의해 설립과 폐업이 결정되는 협력업체에 속하거나 인력업체에서 파견 나와 근무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현대자동차의 1만여명에 이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사용, 신세계이마트의 1만여명에 이르는 수급사원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고용, 삼성전자서비스의 6000여명에 이르는 수리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고용…. 원청인 재벌 회사들이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 지휘·감독권과 생사 여탈권을 행사하면서도 제3자라는 ‘바지 업체’를 중간에 끼워놓고 도급계약으로 위장함으로써 이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최저임금 위반 문제가 발생하여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어나가도, 연장·야간·휴일 등 초과노동에 대한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도 자신이 고용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청들은 책임을 부인해왔다. 원청이 ‘바지 업체’에 속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 등 모든 근로조건을 결정하면서도 원청의 책임을 따질라치면 도리어 ‘사용자가 아닌 우리에게 왜 종주먹이냐’며 용역 깡패들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오히려 피해자인 노동자에게 재갈을 물려왔다.

삼성을 비롯해 글로벌 경영을 운운하는 재벌들은 제조업·유통업·서비스업까지 가리지 않고, 인간 노동에 대한 중간 착취를 금지하는 헌법과 근로기준법을 비웃으며 사익 추구를 위해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 같은 불법 고용을 당연시해왔다. 이는 세 가지 동기에 기인한다. 먼저, 원청 회사들은 ‘바지 업체’들과 1년 이내 용역 내지 도급 계약으로 필요에 따라 ‘바지 업체’와의 계약을 종료해 언제든지 그에 속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바지 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을 공급받음으로써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의 비교를 차단하고 고용 불안을 이용하여 ‘싼’ 임금의 노동력을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외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회피하고, 경우에 따라 업체를 바꾸어 폐업시켜버림으로써 노동 3권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 등 재벌들의 실적과 이익이 단군 이래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전체 국민의 삶이 갈수록 피폐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간접 고용과 기간제 등 비정규직의 일반화이고, 이를 조장하는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 등 불법 고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왜 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재벌들의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서 이처럼 조용한 것일까? ‘갑을 관계’로 대표되는 남양유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회적 빈곤과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슈퍼 갑’(원청 재벌)들의 최대의 ‘갑질’인 위장된 불법 고용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삼성과 현대가 주도하는 위장 도급과 불법 파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는커녕 당장 대다수 국민의 내일의 삶과 고용조차 담보되지 않는다.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한겨레 인기기사>

알뜰폰 2년, 안 뜨는 이유 있다
진선미·김현 의원 “국정원 국정조사 무산될까봐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이 정부의 ‘귀태’? 그건 국정원입니다
미 아이비리그 여대생들의 ‘신 성풍속도’
[화보] ‘그때 그시절’ 경복궁에서 있었던 별의별 일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