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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모모’와 한밭레츠 / 허미경

등록 2013-07-17 20:54

시간의 꽃을 찾아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라깽이 여자아이.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신비한 능력의 아이. 그 능력이 신비한 것은 사람들이 그 애에게 자기 얘길 하고 나면 왠지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꼈던 데 있다. 어릴 적 축약본으로 읽었던 미하엘 엔데(1919~95)의 판타지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에 대한 기억은 이런 데에 머물렀는데, 실은 이 작품이 현대 자본주의 화폐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출간된 <엔데의 유언>에서 인간적인 화폐에 대한 엔데의 고민과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사망 1년 전에 한 인터뷰집인 이 책에서 엔데는 현대 사회는 돈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인류의 긴 이력 속에서 돈은 본디 등가의 물건과 맞바꾸는 교환수단일 뿐이었으나, 오늘날은 그 자체로 상품이 되어 매매되고 자기 증식을 반복하는 병에 걸려 있다는 얘기다.

<모모>에서 사람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건 시간 저축은행 소속의 ‘회색 신사들’이 나타나 시간을 절약하는 법을 일러주면서다. 시간은 돈이 되고, 사람들은 점점 시간이 없어지는데 회색 신사들은 그렇게 뺏은 시간을 향유하는 ‘이자 생활자’가 된다.

엔데가 모모를 통해 꿈꾸었던 것은 저축할 수 없는 화폐다. 본래 기능을 회복한 돈이다. 그런 그가 주목하는 것이 지역화폐다. 그의 유언은 지역화폐 운동이 세계 곳곳에 퍼졌으면 하는 희망의 피력이다. 그 희망의 싹 중 하나가 한국의 한밭레츠에서 움트고 있다. 여성학자 조옥씨의 <지역화폐와 여성주의>는 2000년부터 지역화폐를 만들어 사용해온 대전 한밭레츠 공동체의 경험을 2008년 8월부터 3년간 기록·분석한 책이다. 30곳이 넘던 국내 지역화폐 공동체는 현재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한밭레츠는 살아남았다. 모모가 회색 신사들에 맞서 시간을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듯, 한밭레츠는 기존 화폐 경제에서 견고히 구축돼온 성별 분업을 조금씩 깨뜨리는 여성과 남성들의 유쾌하면서도 울퉁불퉁한 도전을 보여준다.

허미경 책지성팀장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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