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금융시장에서 일해 온 나는 논리적 이성에 따라 일할수록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집단이성의 힘 때문이다. 예측이 틀렸을 때 나는 내 노력의 부족을 책망한다. 시장 전체의 통합된 지성을 개인이 따라가려면 논리적 이성을 기반으로 삼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탐욕이나 공포가 일시적으로 시장을 왜곡할 수 있지만 집단이성의 힘은 시장을 정상으로 되돌린다. 시장이 성숙할수록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드는 시간은 짧다. 하나의 개인보다 사회 전체가 보여주는 지적 수준이 더 높은 곳에서는 개인과 사회 사이에 적당한 긴장과 신뢰가 존재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든 사회가 집단이성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집단이성은 개인의 다양성과 독립성이 없는 곳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야기현 항공자위대를 방문했다. 731이란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훈련기에 탑승한 그는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많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다. 일본의 관동군 731부대가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잔인한 생체실험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해명처럼, 아베 총리가 하필 그 비행기에 타게 된 것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이었다면 부주의하고 고의였다면 비열하다. 총리부터 일개 시장까지 범국가적으로 일본은 망발과 극언을 일삼는다. 그리고 절대 제대로 된 사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주변국 국민들이 일본한테 입었던 피해 못지않게 일본 국민 자신들도 제국주의의 만행으로 큰 희생을 치렀다. 많은 군인들이 명분 없는 전쟁에서 비극적인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고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소중한 가치도 그 과정에서 훼손됐다. 설령 전쟁에 이겼더라도 그 방식이 비윤리적이라면, 그런 승리를 통해 인간은 구원받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상식적인 자각이 일본에는 없다. 그런 자각의 결핍 때문에 과거에 대한 반성은 결여되어 있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은 주변 국가와 어떤 의미 있는 정서적 연대도 맺지 못했다.
아마도 일본의 집단이성은 과거사란 단지 이해득실의 문제일 뿐이고 사과라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득실의 관점에서도 그 생각은 근시안적이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적 지위를 갖고도 주변국에서 그에 상응하는 존중 대신 경멸을 받았고, 최근 경제적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시아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서 순식간에 일본을 압도해 버렸다. 선진국들 중에 일본처럼 개인의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는 거의 없다. 의견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와 소통하려는 개인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일이 일본에서 드물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세계적인 소설가와 만화가가 일본을 떠나 사는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최근 일본은 중앙은행의 무제한 자산매입에 의한 엔화 약세를 통해 경기회복과 자산 가격 반등에 성공했다. 자민당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 이런 일본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다. ‘아베노믹스’의 근저에는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으로 요약되는 우경화에 대한 의지와 중국을 견제하기 원하는 미국이 일본의 이러한 정책을 지지해준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오랜 경기침체가 고장 난 집단이성과 결합해 만든 합작품이 될 것이다. 치밀한 사실관계의 논증을 통해서 소수가 납득하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얻어내는 집단이성의 역량은 개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해 주는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아주 적은 나라만이 어렵게 갖고 있는 힘이다. 일본은 아주 쉬운 길을 걷고 있다. 일본의 교훈이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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