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박근혜와 불신정치 / 한귀영

등록 2013-07-23 18:58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얼마 전 한 시사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분석한 적이 있다. 70%에 달하는 지지율의 원인을 논했더니 비판 댓글이 무수했다. 지지율이 70%에 이른다면 국민들의 정신감정을 해봐야지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이가 70%를 버젓이 인정하는 게 정상이냐는 비판이 주였다.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키워드 중 하나가 불신일 것이다. 그 불신의 대상에 <한겨레>와 필자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아프다. 이 불신은 결국 불신받는 자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우리 사회가 두 개의 딴 세상으로 나뉜 지 오래다. 서로 단절된 세상에 속한 사람은 다른 세상이 납득이 안 된다. 대선 후 48% 쪽 사람들 다수가 경험한 멘붕 현상이 단적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그를 찍지 않았던 이들의 경악도 생생하다. 주변엔 다 나 같은 생각인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그래서 패배를 인정하기 어렵다. 이렇게 단절은 분열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 불신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집단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전부터 사회통합을 강조하고, 전태일 생가 방문을 시도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는 정치경력을 통해 원칙·신중·신뢰의 이미지를 얻은 몇 안 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통합을 강조하지 않은 지도자는 없었다. 사회통합은 국정운영의 출발점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사회통합이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구체적 방법론과 실천의 여부다. 그게 지금 실종되어 버렸다.

사회통합의 근본 토대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다. 작금의 국정원 사태와 엔엘엘(NLL) 이슈의 복잡한 연쇄고리와 어지러운 정치공방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이 악무한적 정치투쟁 속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행여 정부 여당이 이 불신의 만연을 은근히 즐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태를 진흙탕으로 만들수록 유리한 건 대개 여당이기 마련이다. 진실이 불분명해 보이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비슷해 보일 때 국민들은 정치를 냉소하며 멀어진다. 불신의 정치가 만연할 때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역설적이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다. 낮은 정치관심도는 결국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불신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김상균 국민행복연금위원장이 기초연금 지급범위 문제로 한마디 했다고 한다. 대선 공약 파기라는 지적에 “선거란 게 원래 그건 것”이라는 요지로 발언했다. 이분의 말을 보면 “불신의 정치란 게 원래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치불신 조장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무의식도 은연중에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복지국가 북유럽을 있게 한 것은 훌륭한 제도와 정치인 못지않게 사회적 신뢰와 협력이라는 문화적 요인이다. 노선투쟁은 한국보다 더 치열하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히 타협하고 문제를 풀어온 역사가 지난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신뢰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퍼트넘은 이런 상호신뢰와 협력이 자원이나 제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면서 ‘사회적 자본’이라고 불렀다.

박근혜 정부는 진흙탕 정쟁과 주요 공약 후퇴 속에서 통합의 근간이 되는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지율이 높으니 당장의 정치적 이해득실에서는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대신 우리 사회의 토대인 사회적 자본이 거덜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불신 정치는 자신이 쳐놓은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29만원 할아버지’ 전두환의 거짓말 시리즈
“한줄로 세워 놓고 일제히 총검으로…” 동학 농민군 학살 일본군 일기 첫 공개
“벤츠와 소나타, 번갈아 타보고 사세요” 비교시승 마케팅 열기
P&G의 새 CEO는 출근하자마자 차기 CEO 찾더라
[화보] 남미 출신 교황의 첫 남미 방문…브라질 국민들 열렬한 환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