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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부의 혈연선택 / 김우재

등록 2013-07-29 19:1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재벌닷컴에 따르면, 개인 재산 1조원이 넘는 한국의 부자는 28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 6명만이 자수성가했고 나머지는 상속증식으로 부를 축적했다. 미국 최고의 부자들 대부분이 자수성가형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토니 셰이는 온라인 신발사이트 자포스를 아마존에 팔아 약 1조4000억원을 벌었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오래된 거리를 사들여 젊은 창업가들을 위한 협업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운타운 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계획의 모토는 ‘마주침’, ‘협업’, 그리고 ‘공유’다.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밀착된 공간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혁신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이 젊은 부자의 소망이다. 앤드루 양이라는 젊은 창업가는 비영리조직 ‘벤처 포 아메리카’를 통해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을 빈곤과 실업에 찌든 도시로 보내는 사업을 시작했다. 앤드루 양은 말한다.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더는 은행가와 컨설턴트의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 인적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유전자는 이기적인 속성을 지녔다. 자신의 복제물을 더 많이 퍼뜨릴 수만 있다면 유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죄수의 딜레마는 합리적인 선택이 배신에 이르는 비극을 다룬다. 유전자의 이기성과 죄수의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개체 간의 협동이 일어나는지는 진화생물학과 경제학의 오래된 난제다. 이론생물학자 마틴 노왁은 최근 출간된 저서 <초협력자>에서 협력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혈연선택’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할 가능성이 많은 친족에게 투자하는 행위는 그 유전자에게 큰 이익이 되었을 것이다. 혈연선택은 해밀턴에서 도킨스로 이어지는 협력에 관한 유전자 수준의 설명이다. ‘집단선택’은 논쟁적인 이론인데 더 이타적인 집단이 이기적인 집단에 비해 생존율이 높다는 것이다. ‘직접상호성’은 가장 원초적인 협력의 방식으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결혼식 부조 문화는 직접상호성의 아주 좋은 사례다. ‘간접상호성’은 평판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호혜를 베푼 상대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간접상호성을 통한 협력의 발생이 더욱 빈번해진다.

협력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고 해서 협력이 배신보다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협력은 결코 안정적인 전략이 아니다. 협력은 배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의 하나다. 그래서 마틴 노왁은 그의 책 말미에서 “우리는 되도록 오랜 기간 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들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협력이 발생하는 마지막 길, 공간게임의 의미가 각별해진다. 협력자들끼리 더욱 잘 뭉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배신자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협력자들의 무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처럼 협력을 조장하는 사회적 구조는 진화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부자들은 혈연선택이라는 철저히 원시적 협력의 도구에 의존한다. 자신의 부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들만을 위해 사용되며, 다른 협력의 도구들은 무시된다.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많은 미국에서, 그 부자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협력을 위한 공간의 재배치, 곧 사회적 구조의 변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사재 8000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일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재단은 혈연선택의 최악을 보여주는 사례다. 돈 없는 서민들은 협동조합이라는 공간게임으로 몰려들고 있다. 어느 쪽이 한국 사회의 협력에 이바지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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