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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나오시마와 제주섬들 / 허호준

등록 2013-07-30 18:47

허호준 사회2부 기자
허호준 사회2부 기자
여름 휴가철이다. 제주공항은 휴가철을 맞아 오가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제주를 찾는 여행자들의 여행 유형도 많이 바뀌고 있다. 단체 여행에서 개별 여행으로, 관광지를 찾는 관광에서 자연을 찾는 여행으로 여행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제주의 주변 섬들이 인기다. 성산일출봉 바로 앞 우도를 찾는 관광객은 2007년 43만3000여명에서 6년 만인 올해는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제주도 전체 관광객의 10%가 넘는 수치다.

일제 강점기 격렬하게 전개됐던 해녀 항일투쟁의 고장이자 항일투사 강관순 선생이 지은 <해녀의 노래> 무대이기도 한 우도는 가는 곳마다 빼어난 절경을 품고 있다. 하지만 섬은 관광용 사륜오토바이와 관광버스 그리고 관광객들이 갖고 오는 차량 등으로 붐빈다. 여기서 나오는 소음과 매연도 만만치 않다.

섬 특유의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기대하고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우도의 해녀 할머니들은 마을 안길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량 때문에 걷기조차 불편하다고 한다.

국토 최남단이라는 이유로 마라도를 찾는 관광객은 올해 70만명 가까이 이를 전망이고, 올레길과 청보리축제로 알려지고 있는 모슬포와 마라도 사이 가파도의 관광객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가파도가 일제 강점기 제주도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는 역사를 아는 이는 드물다. 고려시대인 1002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고 해 ‘천년의 섬’으로 불리는 비양도를 일주하는 산책로 곳곳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

올레길의 열풍이 섬으로 이어지면서 앞으로도 섬을 찾는 여행객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우도는 이런 추세라면 몇년 이내에 관광객 증가가 섬의 수용능력을 넘어설 것 같다. 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상업시설들은 많이 있으나 섬의 참모습을 보여줄 시설은 드물다. 우도에 섬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생활사박물관이나 역사박물관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자치단체의 정책 부재 탓이다.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의 나오시마는 제주도가 가파도 개발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섬이다. 나오시마는 산업폐기물과 오염 등으로 주민들이 떠나던 섬이었으나 일본의 베네세그룹이 1985년부터 지금까지 600억엔(한화 6500억여원)을 들여 나오시마섬과 주변 섬들에 미술관 건립, 역사유적과 폐가·공가의 예술공간화 사업을 벌여 세계적인 예술섬으로 변신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지난 3월 국내 굴지의 기업 관계자가 일본 나오시마를 거론하며 가파도에 사회공헌사업을 추진하고 싶다고 제안하자 나오시마를 견학했고,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도 이 섬을 둘러봤다. 연간 50만명이 찾는 이 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영업시설들은 거의 없다.

30여년 전만 해도 황폐화됐던 나오시마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세계적인 섬으로 탈바꿈한 것은 베네세그룹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 혼자의 열정과 자금만이 아니었다. 섬의 미래를 위한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과 이를 신뢰하고 적극 지원한 자치단체의 역량, 섬 주민들의 관광안내 및 작품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능동적인 참여, 그리고 여러 예술인들이 모여 섬을 가꿔가는 집단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역사와 인문, 자연을 두루 갖춘 제주의 섬들은 거창한 규모가 아니더라도 자치단체와 주민, 전문가들이 힘을 모으면 ‘제주판 나오시마’로 만들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섬들이다. 굳이 나오시마와 똑같은 예술섬을 만들 필요는 없다. 제주섬의 가치가 담기고, 그 속에 사는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편안한 섬을 가꾸면 된다. 자치단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허호준 사회2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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