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7월 말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는 형이 서울에서 차를 가지고 내려가 있었다. 거기 편승해 2박3일 머물렀는데, 그 형이나 나나 제주도를 여러 번 다녀와서 어지간한 곳은 다 가봤다. 그러니 관심사는 먹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보름쯤 전부터 제주도의 여름 한치회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쫄깃한 식감, 몇 번 씹으면 어느새 녹아 없어지는 부드러움, 달고 고소한 뒷맛….
제주도에 가면 들르는 맛집이 몇 곳 있다. 한치회는 제주시내의 한 식당에서 먹는데, 거기선 회를 싸먹으라고 콩잎을 한 바구니 내준다. 콩잎의 쌉싸름한 향은 중독성이 있다. 깻잎은 저리 가라다. 그 집의 객주리(쥐치) 조림도 일품이다. 어디냐고? 말 못한다. 자꾸 소문내면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제주에서 성산 가는 길에 회국수집이 있다. 4~5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주로 제주도민들이 오는 한적한 곳이었다. 면발 굵은 국수에 회를 꽤 큼직하게 썰어 넣고 비빈 회국수와, 국물에 성게알을 듬뿍 넣은 성게국수가 주메뉴이다. 삶은 문어나 소라, 해삼 같은 것도 있다. 값도 싸다. 점심때 자주 갔는데, 2년쯤 전에 거기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봤다. 예감이 좋지 않더니,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번에 갔더니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게 했다. 점심때가 지난 1시 반이었는데 스무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린 발길을 돌렸다.
그 집은 안 그러겠지만,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한 뒤에도 오래도록 맛을 유지하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점포를 늘리고 분점을 내고, 대체로 그러면서 맛집들이 맛이 가지 않던가. 아니 맛을 유지하느냐는 문제 이전에, 소문이 나고 사람이 몰리는 일 자체가 기호나 취향, 가치 같은 면에서는 참 매력 없는 일이다. 사회의 평균적인 가치 평가와 나만의, 혹은 내 주변 몇몇 지인들끼리의 가치 평가 사이에 괴리가 큰 것, 그런 상태에서의 소비나 향유가 멋진 것 아닌가. 이를테면 후미진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았을 때, 헌책방에서 별 기대 없이 산 책이 무척 재밌을 때, 남들 무시하던 영화를 보다가 감동받을 때, 인근 야산에서 사람들 잘 모르는 비경을 찾았을 때 등등….
비교와 경쟁에 익숙한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은 이런 가치의 괴리 상태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정보가 드러나면 끝이다. 숨어 지내던 독립군의 거처가 발각돼 일본군이 쳐들어오듯, 사람들이 몰려오고 이내 가치는 평준화되고 차이는 사라진다. 그래도 전에는 이런 은신처들을 적발하려고 돌아다니는 공작원이 기자, 작가, 방송 피디 정도였는데, 지금은 모두가 공작원이다. 맛있는 것 보면 사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고, 페이스북, 트위터에 띄우고….
그러고 보면 정보 소통이 빨라지면서 사람들의 식성이나 취향 자체도 평준화되는 모양이다. 전에는 고수풀 못 먹고, 평양냉면 싫어하고, 동물이나 생선의 내장은 못 먹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요즘엔 다들 잘 먹는 것 같다. 경상도, 전라도 식의 식성 차이를 보이는 이도 거의 없다. 내가 맛있으면 남들도 맛있어한다. 그러니 소문나면 끝이다.
제주시에 각재기국을 파는 집이 있다. 각재기는 전갱이과의 생선인데, 배추를 넣고 심심하게 끓여내는 국 맛도 훌륭하지만, 이 집에선 배추에 생선조림과 젓갈을 넣고 쌈 싸먹는 맛이 최고다. 이미 소문이 나서 점심때 줄을 길게 서기 시작한 지도 오래됐다. 그래도 맛이 한결같은, 많지 않은 집이다. 이번에 갔더니 뜻밖에 사람이 적었다.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약간 숙성된 고등어회에 제피잎을 곁들여 술 한잔 했다. 덜 붐비니 참 좋았다. 어디냐고? 이미 소문났다고 하지 않았냐고? 그래도 말 못한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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