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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공부 좀 할걸 / 이라영

등록 2013-08-07 19:11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막내 외삼촌과 통화하며 서로 얼굴 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이리저리 날짜를 꼽고 있었다. 30년 넘게 운전대를 잡고 살아온 삼촌에게 주5일 근무나 하루 8시간 노동은 여전히 남 얘기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일이 아니므로 먹고살 만큼 벌려면 언제나 ‘자발적 과잉 노동’이 강제된다. “나도 퇴근시간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더니 “할머니가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 좀 할걸” 하면서 껄껄 웃는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후회다. 남녀노소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하는 후회가 뭐냐고 물으면 “공부 좀 할걸”이라고 한다. 한국처럼 사회 구성원이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도 드문데 모두들 공부 안 한 후회를 한다. 그리고 과잉 노동과 저임금을 공부 안 한 ‘내 탓’이라고 받아들이는 정서를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부모들의 공부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자식들을 향한 빛나는 교육열의 원천이 되고 너도나도 “공부 안 하면 너만 손해다”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괜찮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말한다. 공부를 잘해서 개인의 성공을 이루고 부모의 체면 유지, 혹은 집안의 계층 상승에 기여하는 것은 미덕이며 가장 큰 효도나 다름없다. 열아홉살에 치르는 대입 시험이 인생을 좌우하니 부모들의 치열한 사교육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교육열이 높은 이유는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배우자고 했다던 한국의 교육열은, 실은 공부 못한 사람으로 멸시당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상스럽게 욕하지만 정작 상스러움은 다른 곳에 있다. 고된 노동이 마치 ‘공부 못한 죄’로 받게 되는 형벌처럼 여겨진다.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말처럼 노동환경의 많은 문제점들은 사회적 의제가 되기보다 ‘능력 없는’ 개인이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짐이 되었다. 그리고 공부 안 한 ‘손해’를 너무들 ‘착하게’ 수긍한다. 노동은 왜곡되었고 노동자는 패배자가 된다. 그래서 생산직 노동자가 고액 연봉을 받으면 사회는 유난히 호들갑을 떤다. 사농공상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돈은 능력이고 능력이 곧 도덕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해도, 실은 모두 기만이다. 육체노동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소위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 앞에서는 굽실거린다. 특별히 이상한 일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위계다. 몸은 아주 훌륭한 상품이 되었지만 그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노동은 경시한다.

노동을 숭배하거나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 속에서 가끔 보람을 느낄 뿐이다. 문제는 노동의 위계다. 혁명 시인이었던 러시아의 마야콥스키도 그의 시 ‘노동자 시인’에서 “하지만 시인들이 하는 일은-더욱 훌륭한 일인데…”라며 헷갈리는 태도를 보였다. 이 오래된 위계는 육체와 정신의 위계와도 관련 있다. 그런데 육체와 정신은 분리될 수 있는가. 존재란 실체가 아니라 행위다. 행위는 육체와 정신의 분리로는 불가능하다. 정신노동은 몸에 흔적을 만든다. 안질환, 온갖 신경성 질병 등.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조차 모호하다. 육아는 정신노동인가 육체노동인가. 노동, 그러니까 모든 살려는 ‘몸부림’은 ‘마음고생’을 동반한다.

“태초에 노동이 있었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구처럼, 노동은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숭배의 대상도 패배의 징표도 아닌, 살아 있는 자의 행위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하지 못한 공부는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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