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과학의 날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4월21일은 과학기술처의 설립을 기념하고, 과학기술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1968년 박근혜 대통령의 선친께서 친히 제정하신 기념일이다. 원래 과학의 날은 4월19일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꿈꾸던 김용관은 1934년, 찰스 다윈의 사망일을 ‘과학데이’로 정했다. 이 운동은 당시 많은 지식인의 호응을 얻어 ‘과학지식보급회’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김용관은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민중운동의 전통으로 이어지던 과학데이는 대통령 선거 2주일 전에 정치적 선전물로 급조된 부처의 기념일로 대체되었다. 과학의 날이 사라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융합이 필수이기에, 과학의 날과 정보통신의 날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과학은 정치의 도구다.
박정희 시대에 과학은 경제발전과 기술개발을 위한 이념적 도구였다. 군사정부의 초기 연구개발계획 명칭이 ‘기술진흥 5개년 계획’으로 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사정부에서 과학은 경제적 실용성이 없는 분야로 여겨졌다. 이후 미국 존슨 대통령이 한-일 수교의 대가로 국가적 연구소의 지원을 약속하고, 금속공학자 최형섭이 파이클럽이라는 신진 과학기술자들과 함께 박정희와 정치적으로 결탁하면서 키스트(KIST)가 설립된다. 과학은 이때 처음으로 정치적 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과학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과학은 서양 선진국의 발전을 군사정부의 정통성과 연결시키려는 정치적 선전물, 곧 수식어로 쓰였다. 경제개발만을 앞세우는 과학기술 정책의 틀이 짜였다. 실용성 없는 학문은 무조건 배척하는 전통도 이때 시작되었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군사정부의 과학기술 패러다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민주화 세력한테도 군사정권이 세운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대안은 없었다. 오히려 과학기술 정책에서만큼은 군사정부의 정책을 답습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바람은 과학기술계를 비껴갔다.
이명박 정부가 과학기술부를 폐지했다. 과학기술계는 탄식했다. 박근혜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과학기술계는 환호했다. 방송통신 없는 미래부는 껍데기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과학기술은 또다시 껍데기가 되었다. 인문/문화계 원로들은 청와대에 초대됐지만, 과학기술계 원로들이 초대되었다는 말은 없다. 과학벨트 예산이 흔들린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불만을 토로하는 것 이외의 실천이 없다. 정치권과 동등하게 타협할 조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조직들도 박정희 향수에 젖은 원로들이 장악하고, 정권에 저항하는 것을 금기로 삼는다. 정치인에게 과학기술계는 말 잘 듣는 순한 양이다.
선진국들은 현장에서 훈련된 과학기술자들이 연구실과 기업 그리고 정책의 입안 과정 모두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후 미국에선 버니바 부시라는 공학자가 루스벨트를 상대로 해 그 일을 했다. 한국에선 최형섭이라는 공학자가 박정희를 상대로 해 과학기술자들을 노예로 팔았다. 그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진보세력에도 과학기술자를 위한 대안은 없다. 과학을 껍데기로 여기는 이들을 더는 믿을 수 없다.
“한 개의 시험관은 전세계를 뒤집는다.” 과학데이 운동의 구호다. “과학은 그 진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진보를 이룬다.” 크로폿킨의 말이다. 그 환경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험관을 만지던 그 손으로 건설해 나가야 하는 투쟁이다. 그때 우리는 과학을 즐길 수 있고, 사회는 과학으로부터 진보를 약속받을 것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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