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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카파이즘 / 정영무

등록 2013-08-27 19:25수정 2013-08-27 22:16

1944년 8월 프랑스 파리 서남쪽 샤르트르에서는 한 삭발 여인이 군중들에게 둘러싸였다.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독일군이 점령했던 지역을 연합군이 다시 차지한 직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중들은 독일군과 놀아난 창녀를 처단하라고 외쳤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여성이 ‘저 여자는 내일이면 미군과 잠을 잘 것’이라며 잔인하고 소용없는 짓이라고 막고 나섰다. 하지만 군중들은 여인을 쫓아가며 분노를 토해냈다. 로버트 카파의 렌즈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전쟁과 여인’이라는 한 컷의 사진은 전쟁이 인간성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파의 대표작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전쟁 한복판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사진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코르도바 전선에서 돌격하려던 그의 친구 병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것이다. 피격의 충격으로 순교자처럼 두 팔을 벌린 병사는 두 무릎이 꺾이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총을 놓치며 땅바닥으로 풀썩 무너져 내린다. 한 인생이 1㎝ 쇠붙이와 등가가 되는 찰나의 포착은 사진의 역사를 카파 이전과 이후로 나눴다.

전쟁을 뼛속 깊이 혐오한 카파는 결국 전쟁터에서 41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보헤미안이다. 전장과 여인들 속에서 하루를 평생처럼 살았다. 폐허가 된 도시를 걸으면서 카파는 말했다. “전쟁에서는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사랑해야 한다. 어떤 입장에 있지 않으면 상황을 견뎌낼 수 없다.”

카파는 사진을 단 한 줄로 이야기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아서다.” 카파이즘으로 일컬어지는 이 말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폭력과 위선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 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초점을 맞출 필요도 없고 소통채널도 다양해진 오늘날 카파 탄생 100주년 사진전(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은 더욱 눈길을 끈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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