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을 일주일 앞둔 1996년 4월4일 중무장한 북한군 1개 중대가 돌연 판문점에 난입해 박격포 진지까지 설치하며 사흘간 무력시위를 벌였다. 국무총리와 장관이 잇달아 전방을 방문하고 국방부 지휘통제실의 긴박한 장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등 안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4월8일 밤 그간 합참에 위기 조성을 독려하던 유종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합참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신한국당) 여론이 15퍼센트 이상 좋아졌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격려했다. 총선에선 신한국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압승했다.
8일 뒤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고 5월23일에도 1시간 이상 우리 경비정과 대치하다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7월 열린 국회에서 야당은 판문점 사건을 엔엘엘 월선 사건과 비교하며 ‘북풍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양호 국방부 장관은 “엔엘엘은 공해상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이라며 “넘어와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실제 1977년 박정희 정권이 영해법을 만들 때도 서북해역 경계선에 대해 ‘헌법 3조에 준하여 처리한다’고 얼버무렸다.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영토이므로 굳이 영해선을 그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 영해지도엔 지금도 태안반도 앞 소령도 북쪽으론 아무 표시가 돼 있지 않다.
그런데 1996년 하반기 북풍 의혹이 커지자 정부는 갑자기 “북한이 엔엘엘을 침범하면 반드시 사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엔엘엘을 사수해야 할 선으로 공식 선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엔엘엘이란 용어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이상 김종대, <서해전쟁>)
1990년대 중반 이후 엔엘엘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면서 서북해역에서 5차례나 대형 사건이 터졌다. 그중에서도 2010년의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를 파헤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최근 어렵게 개봉했다. 한 번씩 관람하길 권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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