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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누가 민주주의를 뒤흔드는가? / 이창곤

등록 2013-09-15 18:45수정 2013-11-01 15:38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러 시골을 찾았다. 이맘때의 연례행사다. 하지만 늘 후다닥 되돌아오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의 얼굴과 맵시를 찬찬히 들여다보질 못했다. 하여, 오랜만에 묵은 벗을 만나 늦은 밤 마을 골목길을 어슬렁어슬렁 거닐었다. 타박타박 걸음을 뗄 때마다 손전등 불빛 따라 나타나는 정경은 잊었던 추억을 스멀스멀 솟구치게 했다. 어느덧 닭서리를 모의하던 유년 시절의 그 밤으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때로는 옛 기억을 확인하고 때로는 달라진 풍경에 신기해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듯 다녔다. 고추밭으로 바뀐 집터엔 주렁주렁 붉은 고추들이 땅바닥에 코를 처박을 정도로 제 몸을 버거워했고, 대궐같이 드높았던 큰 기와집은 왜 그리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지 새삼 세월을 느끼게끔 했다.

아련한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귀향길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무겁고 착잡했다. 사촌 형제들과 모처럼 시골 밥상을 마주한 저녁 식사 시간,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는 팔순의 셋째 큰어머니는 맛난 미역국과 반찬들을 밥상에 놓으면서 “어이구, 국회의원이 간첩이라며! 빨갱이들이 그리 많다냐?”라며 나라 걱정을 하신다.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의원은 이곳 어르신들에게는 재판도 하기 전에 이미 간첩이나 진배없는 판정을 받고 있었다.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방송 뉴스가 세상 소식을 전해 듣는 유일한 소스다. 그들에겐 오직 이 의원 뉴스만 있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뉴스는 없다. 왜? 이튿날엔 곳곳에 산재하는 ‘빨갱이들의 활개’를 경계하는 또다른 걱정과 적의를 전해 들었다.

한국전쟁이 종료되고 60년, 민주화 이후 26년이 흘렀지만 분단의 질곡은 이리도 질기고 강고한 것인가? 아직도 이 땅이 빨갱이가 활개치는 곳이며, 권력에 비판적인 이들은 무조건 붉은 무리로 치부되는 세상인가? 누가 민심에 증오와 적의를 품도록 했으며, 진정 이 나라 국헌과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시대착오적인 한 줌의 무리들인가? 자신들의 부정을 가리려고 그들을 이용해 매카시즘의 광풍을 휘몰아치게 하는 이들인가? 무엇보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째서 이토록 어이없이 쉽게 역주행을 하는가? 귀경길, 머릿속은 숱한 질문으로 무거워졌고, 뒤이어 온 허탈감은 잠시나마 즐거웠던 추억의 시간을 어느새 저 멀리 밀어내 버렸다.

권언유착의 ‘공작정치’ 시대다.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이 시대착오적 저질 정치는 엔엘엘(NLL) 대화록 공개를 통해 노골화하더니, 급기야 검찰 총수를 날리는 마당에선 화려한(?) 커넥션의 면모를 과시하며 절정에 이르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3각 커넥션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동맹 세력’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정보기관이야 일찍이 민낯을 드러냈고, 모처럼 민의의 지지를 받은 검찰 총수를 쫓아낸 것은 이 기관과 함께 최고의 권부인 청와대와 최대의 부수를 자랑하는 유력 신문의 커넥션의 결과라는 의혹이 짙다. 권(력)·정(보기관)·언(론)의 3각 커넥션이다. 겉으론 이들의 정치가 성공했을지 모른다. 대선 개입 의혹 수사는 주춤하고, 민심은 온통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경계에 쏠려 있는 듯하고, 사사건건 반대하는 야당의 목청도 진정되지 않았나? 더욱이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을 일거에 날리는 신수(?)를 발휘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 할 교훈이 있다. 민주주의와 민심의 쇠는 일순 휠지언정 두드릴수록 강해지며, 그것은 언젠가 부메랑의 칼이 될 것이란 점을. 음습한 공작정치는 불법의 틈새를 지니기 마련이며, 종내에는 그 틈새로 거센 해일이 밀어닥칠 것이란 점을….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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