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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정보 정치의 귀환 / 김규원

등록 2013-09-15 19:36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지난 9월4일 저녁 7시20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검정 양복 차림의 국가정보원 직원 30여명이 1층부터 5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목표는 520호 이석기 의원실이었다. 잠시 뒤 이 의원실 앞에 모인 국정원 직원들은 “정당한 법 집행입니다”라고 소리치면서 거칠게 이 의원실로 밀고 들어갔다. 의원실 안팎에서 50분가량 드잡이가 벌어진 끝에 결국 이 의원은 저녁 8시11분께 스스로 나와 국정원의 차량에 몸을 실었다.

이날의 구인에 앞서 국정원은 지난 8월28일과 29일에도 이 의원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해 의원회관에 들어갔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간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한 국회의원에 대한 압수수색과 구인을 위해 국정원이 국회에 3차례나 밀고 들어간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회 본관에서도 2012년 1월 박희태 의장 비서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국회 본관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는 엄격히 제한돼 있다. 국회법 150조에 따라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 등에서 의장의 동의 없이 체포될 수 없다. 이것은 물리적 폭력을 가진 행정부로부터 입법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국회는 일종의 ‘소도’인 셈이다.

이번에 국정원 직원들이 이 의원실에 3차례나 밀고 들어간 일은, 형법상 ‘내란 음모’ 혐의를 받는 민족해방(NL) 계열의 한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구인이라고만 보기가 어렵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에서 다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사건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특히 그 균형을 무너뜨린 주체가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국정원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폭력기구를 정권별로 보면, 이승만 정부 때는 경찰, 박정희 정부 때는 중앙정보부, 전두환 군사정부 때는 국가안전기획부, 노태우 정부 이후엔 검찰이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선 뒤 아버지 시절과 마찬가지로 다시 정보기관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군 출신이 정보기관장을 맡은 것도 똑같다. 웃지 못할 일은, 이렇듯 국정원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자 지난 정부 때 온갖 무리한 수사로 개혁 대상 1순위로 꼽혔던 검찰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인 집단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부터 국정원(장)이 주도했거나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는 행위들을 보자. 대선 때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고,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을 공개했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재연기를 추진했고, 이석기 의원의 압수수색과 구인을 위해 3차례나 의원회관에 밀고 들어갔고, 이 의원 등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했고, 심지어 지난 정부까지 최강의 국가 폭력기구였던 검찰의 수장을 낙마시켰다(는 혐의를 받는다). 유신 시절에나 봤던 날것 그대로의 ‘정보 정치’다.

이제 이런 국정원의 ‘정보 정치’에 제동을 걸 주체는 국회밖에 없다. 국회가 국정원의 목에 방울을 달고 코뚜레를 꿰고 고삐를 채우고 재갈을 물려야 한다. 국정원의 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고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할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없이 싸워야 한다. 여기서 국회가 이긴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시민권은 지켜질 것이고, 진다면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부디 다른 의원들이 이 의원처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한테 끌려나오면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면 이미 늦을 것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을 테니까.

김규원 정치부 통일외교팀장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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