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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임계다양성 / 김우재

등록 2013-09-23 18:43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치타가 멸종하는 이유는 종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유전적 다양성이 이미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치타들을 아무리 교배시켜도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상쇄시킬 유전적 다양성이 없다. 치타는 곧 멸종하고 말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클수록, 생명이 불확실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은 커진다. 양성 생식은 유전적 다양성을 증가시켜 기생 생물로부터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다. 단 한 마리의 바이러스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 몸은 수십만 종류의 항체를 미리 생산해 둔다.

한 종류의 항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기될 운명이지만, 우리 몸은 그런 전략을 취한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생명체가 선택한 최고의 전략은 다양성의 확보였다. 자기조직화하는 최소한의 복잡계가 거동하기 위해 요구되는 요소들의 최소다양성, 그것을 임계다양성이라 부른다.

얼마 전 서울대 이일하 교수가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괴물 예산이 다른 기초연구자들의 연구비를 고갈시키고 있다는 글을 써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일하 교수의 글처럼 기초과학연구원 사업을 폐지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초과학연구원 쪽의 항의처럼 다른 기초과학 예산을 증원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엔 한국의 과학정책 자체가 지닌 패러다임의 한계가 있다.

한국 기초과학정책은 노벨상이라는 콤플렉스에 눈이 멀었다. 기초를 충실히 쌓아가다 보면 노벨상은 부산물로 떨어지는 열매라는 인식 대신, 마치 월드컵 4강을 위해 축구 대표팀을 지원하듯 과학을 엘리트 스포츠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탁월함보다는 다양성을 겨냥한 연구비 지원이 (과학에) 더욱 생산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얼마 전 ‘거대과학 대 소규모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논문의 결론부다. 저자들은 제한된 과학예산을 어떤 방식으로 투입해야 더욱 생산적인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저자들의 결론은 간명하다. 과학적 다양성이 클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처할 연구의 씨앗이 자랄 가능성이 더욱 크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연구 역량을 지닌 연구자 대부분에게 기본적인 연구비를 분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몇 걸음 양보해서, 과학정책이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2000~2008년 노벨상을 수상했던 논문들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노벨상 수상 논문들이 별다른 연구비의 수혜 없이 등장했다. 중요한 것은 연구비의 규모가 아니라, 다양한 연구자들이 연구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공공정책은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나아가 과학예산의 지원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어야 한다. 과학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다양성의 확보다.

작고한 고생물학자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과학이 숨쉬기 위한 임계다양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제 그 임계다양성을 향해 가야 할 때다. 과학예산을 둘러싼 논쟁은 골목상권을 둘러싸고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에 벌어지는 논쟁의 축소판이다. 한 사회의 과학을 둘러싼 제도들은 그 사회의 구조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벌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경제적 모순이 기초과학연구원을 둘러싼 정책적 모순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불행이 과학자들을 비켜 갈 것이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불행은 반드시 과학자들에게 돌아온다. 과학자들이 사회와 소통해야만 하는 이유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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