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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다디단, 그러나 독인 줄도 모르고

등록 2013-10-02 18:54수정 2013-10-03 10:20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공직 윤리의 문제라면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나 그의 퇴임과 함께 막가파식 폭로와 사생활 침해는 오히려 더 폭주한다. 이제 만만한 사인이니, 보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까. ‘조선’의 매체들은 임씨의 옛 가정부를 등장시켜 증언 혹은 전언을 연일 쏟아낸다. “뻔뻔스런 채 전 총장…” 이런 식이다. 전화통화 내용을 본인 여부도 확인 않고 보도한 매체도 있다. “그 인간이 지금 천하의 거짓말쟁이가 돼서 제정신이 아닌 거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제보’를 전제로 국회에서 “채 전 총장과 (혼외아들을 낳았다는) 임모씨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채 전 총장과 모 여성 정치인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혹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들만 살판난 게 아니다. 한낮의 목욕탕이나 미용실 등 대중접객업소는 종편의 싸구려 진행자와 패널들의 들뜬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객들은 목욕하고 이발할 생각은 않고 윤창중씨 아류의 전언, 분석, 평가, 전망에 귀를 맡기고 있다. 하다못해 장기표씨의 말에까지 넋을 놓는다. 이런 귀를 더 잡아두려 ‘조선’의 자매 종편은 불륜 문제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신정아씨를 등판시키려 했다. 비록 포기는 했지만, 경쟁사들은 강용석씨를 간판으로 쓰고 있는 터에 몹시 아까운 눈치다. 김진태 부류의 정치가 횡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 거대한 관음증이 이런 무책임하고 범죄적인 보도와 정치를 키우는 토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씨의 이야기를 얌전히 들어야 했다. 날카로운 가위가 정수리 주위를 깎고 있고, 시퍼런 칼날이 목젖 근처를 쓸어내리는데 어쩌겠는가. ‘채 총장 찍어내기야 맞긴 맞는데, 임씨 아들이 그의 혼외자인 것도 맞고, 문제는 채 총장이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또 비겁했다는 것이다. 당장 고백해야 한다.’ 사실 서넛 모인 자리만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분석과 평가와 충고였다. 벌거벗은 객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저의 판단과 비슷해선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러고는 저의 도덕적 우위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남보다 더 큰 목소리로 빈정거리고 조롱한다.

이제 사인의 사생활도 공적으로 통제되는 사회가 된 것만 같다. 그런 매체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희들 사주가 당하고, 웬만하면 단골 카페가 있는 기자들도 당할 수 있는데 어찌 의도했을까. 그럼에도 물고 늘어지는 건, 조폭적 힘자랑이 하나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삿속이다. 그들 눈에 시청자는 말초적 관심사만 나오면 넋을 놓는 맹목적인 소비자일 뿐이다. 틀린 판단도 아니다. 그만큼 관음에 중독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이 당한 사찰 내용을 보고 즐기는 사이, 나의 비밀 또한 그렇게 빠져나가고 그런 체제는 더욱 강화된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불과 20~30년 전 이 땅의 현실이다. 1975년 1월 인권변호사 이병린은 간통 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맡고 있던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직 사임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던 중앙정보부 요원을 내쫓고 난 이틀 뒤였다. 1982년 민한당 한영수 의원도 간통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로선 드물게 국회에서 5공 정권을 대놓고 비판한 직후였다. 그때 안기부는 도청과 미행, 공작을 다 동원했다. 1992년 14대 총선 때는 안기부 요원들이 홍사덕 후보의 ‘사생활’이 담긴 유인물을 살포하다가 걸렸다. 거기엔 “혼외 자식은 내팽개치고 3명의 처녀와 6명의 유부녀를…” 따위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대표의장에 내정됐다.

결국 문제는 (사생활) 사찰이고, (찍어내기) 공작이다. 혼외자 의혹은 채씨와 가족 그리고 임씨가 정리할 일이다. 그걸 문틈으로 엿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란 얼마나 지질하며 병적인가. 게다가 그사이 당신의 주머니에선 돈도 빠져나간다. 연금은 줄고 세금은 는다. 자신을 농락한 정권의 거짓말은 잊혀지고, 또 다른 음모가 진행된다. 한바탕 냉탕에 푹 빠져야 깨달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대기자 chankb@hani.co.kr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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