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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동양증권 ‘호갱’의 눈물 / 이현숙

등록 2013-10-20 19:20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대학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반가움은 잠시, 친구의 낯빛이 좋지 않아 이유를 물었다. 그는 동양그룹 회사채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크게 봐 속앓이를 하고 있다며 눈물까지 지었다.

사실, 그 친구는 오래전 증권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 나름대로 투자에 대한 이해는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동양그룹이 그래도 재벌인데 설마 망하겠느냐고 철석같이 믿었단다. 거래하던 지점 직원이 높은 이자를 주는 좋은 채권이 나왔다고 해, 전세금 인상에 대비해 은행계좌에 묻어둔 돈까지 긁어모아 투자했다고 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자기가 만만해 이용당하는 호구 고객, 곧 ‘호갱’이 되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동양그룹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경제개혁연대는 2년 전 조사에서 우리나라 67개 기업집단의 부적절한 사외이사 구성 문제를 지적했다. 동양그룹은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외이사의 비율이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혔다. 사외이사 상당수가 그룹 회장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맺고 있어 경영진에 대한 견제나 감시와 같은 본래의 목적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힘든 구성이었다.

동양그룹뿐만 아니라 최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기업들도 하나같이 지배구조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아시아 사회책임경영 전문가위원회’와 함께 선정하는 올해 ‘동아시아 30’(East Asia 30) 평가 결과에서도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허약함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경영진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이사회가 구성되어 실행되고 있는지 등 거버넌스 부문의 평균 점수가 전년의 61.7에서 52.9로 뚝 떨어졌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사회적으로 이미 널리 공유돼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 올라와 있는 상법 개정안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핵심은 자산 2조원 넘는 상장회사 146곳의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임하고 대주주 의결권은 최대 3%까지만 허용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사회의 감독기능을 높이기 위한 집행임원제 의무화,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하기 위한 집중투표제의 법규화,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과 같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의미 있는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각종 경제단체가 상법 개정안의 전면 재검토를 요청하는 공동건의문을 발표하는 등 재계는 개정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거세게 내고 있다. 이들은 이번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의무화해 기업경영 안정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움직임에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권도 합세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재계는 기업지배구조는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짧은 생각이다. 오히려 기업경영이 안정되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더욱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기업이 흔들리면 사회가 얼마나 많은 비용과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지 우리는 여러 차례 몸으로 겪었다. 그리고 기업이 흔들린 근본 원인에는 재벌 총수의 전횡과 같은 지배구조의 문제가 있었음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동양그룹 사태는 지배구조 개선이 더 미뤄서는 안 되는 시급한 과제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귀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들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귀한 자식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하지만 대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귀한 자원이고 지켜야 할 자산이라면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틀을 짜야 한다. 수없이 많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소 잃은 것조차 금세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더 반복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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