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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과학지식의 공유 / 김우재

등록 2013-10-21 18:4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얼마 전 <사이언스>에 ‘오픈 액세스’ 방식으로 출판되는 학술지의 상당수가 가짜 논문을 게재승인했다는 보고가 실렸다. 존 보허넌이라는 과학기자에 의해 실시된 이 조사에서 ‘이끼류에서 추출한 물질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가짜 논문이 304개의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 투고되었고, 157개의 학술지에서 별다른 절차 없이 게재승인을 받았다.

‘오픈 액세스’란 현행 학술커뮤니케이션의 폐쇄적인 구조를 개선할 대안으로 1995년 무렵 시작된 운동으로, 출판된 과학적 연구 결과물들은 비용 없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추구한다. 2002~2003년 사이 비비비(BBB) 선언이라 불리는 세 차례의 국제적 회합을 기점으로 과학적 연구 결과물들은 공유자원이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2000년에 탄생한 ‘과학의 공공도서관’(PLoS)이라는 학술지도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네이처>나 <사이언스>로 널리 알려진 과학 학술지들은 논문을 투고하는 저자들에게 게재료를 받는다. 자신의 연구비로 얻은 결과물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대가로 돈을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매체에 글을 싣고 원고료를 받는 상식적인 잣대에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돈을 내고 출판된 논문을 저자 본인도 돈을 내고 받아보아야 한다. 논문의 저작권이 출판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철학은 차치하고, 이처럼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논문 출판시스템이 지난 수백년간 과학계를 옭아매고 있었던 셈이다.

알아서 논문을 투고하고, 게재료를 내고, 구독료를 납부해야 하며, 논문의 심사도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학술지 장사야말로 밑천 없이 떼돈을 벌 수 있는 노다지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과학학술지 시장엔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들어차 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필두로 엘스비어, 슈프링거, 와일리 등의 출판사들이 세계 학술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전세계 대학 도서관의 인터넷 구독료를 매년 5~10%씩 인상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쯤 되면 거대기업인 사이언스지가 왜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오픈 액세스 운동에 제동을 거는지는 분명해진다.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는 정보의 공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과학 연구는 다른 연구자의 연구 결과가 각각의 실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상호 의존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과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과학과 민주주의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지식의 공유>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지식 공유자원에 대한 학문들 간 협력적 연구가 탄생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1960~70년대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사에서 이러한 역사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자유로운 해커공동체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던 소프트웨어 산업이 거대기업들의 등장으로 인해 저작권이라는 수렁에 갇혀버렸을 때, 리처드 스톨먼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통해 거대기업의 독주를 막을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라는 거대기업에 맞선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은 정보의 독점보다는 공유와 사용을 장려하는 철학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티(IT) 혁신을 일궈냈다. 현재의 과학자 사회도 비슷한 위기와 대안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과학지식이 몇몇 거대 학술지들에 의해 독점되고 있다. 과학지식은 공유되어야 건강성을 되찾는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오픈 액세스 학술지들은 무분별한 난립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이제 과학자들이 답할 차례다. 공유인가 독점인가.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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