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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일하는 사람 / 정영무

등록 2013-11-06 19:16

고대 그리스에서 폴리스는 자유에 대해 논하고 명예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거는 고상한 세계다. 반면 오이코스는 수단으로서의 존재자가 사는 거처다. 폴리스에서 철학과 정치가 꽃을 피울 때 오이코스에서는 여성과 아이, 노예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노동과 생계의 무게를 졌다.

폴리스가 고상할 수 있는 것은 오이코스의 비천함에 발 딛고 섰기 때문이다. 폴리스가 생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오이코스에 있는 것들에 필연성의 짐을 온통 떠맡겼기 때문이다. 근대에 와서도 폴리스의 빛을 나눠 갖지 못한 오이코스는 분명히 존재한다.(이진경,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몸을 움직이는 노동이 천시되고 자신이나 자녀들이 이 단어에 속할까 봐 두려워하는 게 우리 사회다. ‘노동은 ( )다’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지겹다, 뻔하다, 지긋지긋하다는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한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탈래’라는 고교의 급훈이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9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도시의 아름다운 건물, 진열된 멋진 상품, 종업원들의 감동적인 서비스 뒤에는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이 배어 있다. 60년대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이끌었던 카르댕 신부는 “생명 없는 물질은 공장에서 값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곳에서 한갓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고 설파했는데 그러한 현실은 지금도 여전하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라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진보 정당의 지향점으로 당연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제정위원장이었던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일하는 사람,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봉건사회와 다른 근대사회다.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민주사회에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강령에 담았던 것”이라고 한다. 종북 프레임으로 쉽게 재단할 일이 아니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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