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부자는 부자를 위한 보수적 성향의 정당을 지지한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진보적 성향의 정당을 지지한다. 나는 이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생존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고 좋은 사회는 공정한 룰에 따라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어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일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적 이해관계뿐 아니라 이타심이나 지역적 편견,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 등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부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 부자를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신념이든 이념이든 그의 선의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선의 없음이 드러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장뿐 아니라 분배에도 방점을 찍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부자를 위선자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 정치인의 재산이 많거나 자식이 유학 중일 때 위선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라면 개인의 정상적인 부의 축적을 비난하고 타인의 소비형태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비난을 하는 건 대개 정치적 이해관계와 자격지심에 얽힌 가짜 보수다.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 정치인의 아들이 특목고에 다니는 것을 보고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목고의 존재 자체에 반대하지만, 특목고가 존재하는 한 특목고를 진학하는 것이 개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그 결정을 비판할 수는 없다. 개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 형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개인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존재다. 특목고에 반대하지만 특목고에 진학하는 것은 ‘위선’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다. 게다가 본인이 아니라 자식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할 권리는 그게 진보든 보수든 그 누구에게도 없다.
고위 관료의 자식들 국적이 한국이 아닌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진보진영도 흔히 저지르는 비슷한 잘못이다.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고위 관료의 자식들이 한국 국적이 아닌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부모와 자식은 별개의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조국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조국을 선택하는 것은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중의 하나다. 한국 국적을 버리고 내가 원하는 다른 나라를 자신의 조국으로 삼겠다는 성인의 실존적 결단을 막을 힘과 권리는, 이념에 상관없이, 어떤 부모도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이 고위 관료 자식들의 국적 문제에 예민한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는 무시하고 권리만 누리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군대 문제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본인과 자식들의 군 면제 비율은 통계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매우 높다. 힘과 권력을 통한 비리를 의심할 만하다. 이런 의심이 만연한 사회에서 국민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 병역 비리는 엄하게 다스리고 한번 국적을 포기한 사람의 재귀화는 미국처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아들의 경우처럼 한국 국적을 포기한 귀화 미국인을 한국 정부가 투자한 공공기관의 미국 법인에서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은 위선이 아니라 죄악에 가깝다.
부자들이 분배 정의를 생각하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종류의 위선은 세상에 많을수록 좋다. 대부분의 위선들은 알고 보면 비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민하고 정죄해야 할 것은 모호한 정치적 위선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선거개입’과 같은 엄연한 죄악이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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