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묶어 국가가 관리하자는, 이른바 ‘게임중독법’이 발의되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중독관리센터’를 통한 전문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건전한 게임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중독성 질환을 국가가 관리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다. 게임의 중독성에 관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광범위한 것도 사실이다. 개인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중독성 질환들을 국가가 복지의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선의도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중독을 규정하는 방식과 그 해결책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중독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은 대부분 개인적이고 그 해결책은 언제나 권위적이다. 중독성 질환들은 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표면화하는 데 비해 처방은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적 차원에 머물기 때문이고, 규정된 중독에 노출된 대부분의 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인 데 비해 처방은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국가적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독의 구조적 원인과 비권위적 해결 방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이 국가적 관리의 근거가 된다면,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질환들부터 치료하는 것이 옳다. 중독의 해결책이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국가의 폭력으로 귀결된다면, 권력층의 중독성 질환도 균형 있게 논의해보는 것이 옳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실제로 학계에서도 중독성 질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권력 중독’(power-addiction)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하고 국가적 관리를 논의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권력층의 권력중독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지니는 무서운 정신 질환이기 때문이다.
흔히 중독은 알코올이나 담배와 같은 물질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으로 정의되었지만, 이제 약물을 넘어 특정 행위들에 대한 반응으로도 정의되고 있다. 도박이나 섹스 중독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권력에 집착하는 행동도 중독의 일종이라는 보고가 있다. 권력을 맛본 개인이 과도하게 권력에 집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몰입하며, 자신의 권력 중독을 부정하고, 이로 인해 가족과 사회에 큰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권력은 분명 심각한 중독성 질환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의학적 근거도 존재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혈청 분석을 통해 일반인들과의 생화학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조직에서의 지위에 따라 이러한 생화학적 차이가 발생하며, 그 차이는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중독에 이르게 만든다. 이러한 생화학적 마커(표지)들은 일부 유전된다는 보고가 있다. 국가 최고권력자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 가문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면, 권력 추구형 성향의 유전적 요인도 무시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중독을 미리미리 관리해야 한다는 합의만으로 중독법의 발의가 가능하다면, 권력중독 규제법도 불가능할 리 없다. 권력중독상담센터를 만들어 7번이나 국회의원을 하려는 이들이나,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이들, 3대에 걸쳐 권력을 승계하려는 이들의 심리 상태를 상담하고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을 처방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중독된다. 그 사회적 피해의 심각성은 게임에 비할 것이 아니다. 게임중독법의 발의에 맞춰 권력 중독을 포함한 ‘5대 중독 규제법’을 만들어 건강한 정치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해주길 바란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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